백야 김좌진 장군배 홍성 O2 철인삼종경기 후기(2015.6.7) 64 철인 이광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의 100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단백질로 둘러 싸인 핵산쪼가리에 불과 한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물이 은근슬쩍 인간의 DNA에 빌붙어 종족보존을 이어 갈려는 후안무치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 의료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왜 메르스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지자체의 지원 없인 개최가 불가능한 철인경기가 무산될 수 도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훈련: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자기를 스스로 평가할 엄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시험이나 진단 등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나 상태를 평가 받는다. 전번 대회를 통해 나의 수영실력이 예전에 비해 너무 나빠졌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나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받아드리기엔 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4번 수영장 가는 날 마다 속도에 관계없이 1500m 씩 장거리 수영을 했다. 여전히 속도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장거리에 대한 부담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여러 운동을 해야 하는 triathlete에게는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통한 질적인 훈련이 중요하다. 일상생활과 가족관계를 저해하는 많은 시간투자나 저 강도의 지나친 장거리 훈련은 본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기록경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5.6.6
1시경 백성엽이 모는 차를 타고 홍성으로 향했다. 대회장 근처 맨션에 짐을 풀고 저수지에서 바다로 바뀐 수영코스, 홍보지구를 둘러봤다. 바다는 거칠다. 파도와 조류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저수지 수영보다 변수가 많다.
2015.6.7
4시에 기상 어제 저녁 준비해 둔 닭죽을 먹고 대회가 열리는 홍보지구로 갔다. 간단히 수영 워밍엎이 있었고 홍성시장 및 송일국 부 회장 등의 인사가 있은 후 7시부터 엘리트선수들이 출발했고 30분도 넘어 각 에이지부 20등 내의 선수들만 모아 먼저 출발시켰다. 부상으로 일년 쉬고 연맹대회 참가가 저조해 순위가 뒤로 많이 밀렸다. 60회 이상 대회에 참가하지만 출발 전은 항상 긴장과 후회의 연속이다. 내가 왜 이 독배를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다.
수영(3km):
출발신호와 함께 벌어진 치열한 선두싸움. 인간은 만년 이상을 목숨을 건 전투 같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오늘의 문화를 건설했다. 우리 몸 속에 각인된 이 경쟁의 DNA는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1초를 더 빨리 가서 뭐 어쩌겠다고… 300m 정도 까지는 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자 조류가 앞길을 가로 막는다. 내 의지하고 관계없이 자꾸 오른쪽으로 몰린다. 거친 바다를 배경으로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01: 00: 55)
사이클(80km):
온몸으로 하는 수영, 런과 달리 사이클은 거의 허벅지 힘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운동이다. 그래서 인지 다리근력 발달이 잘 안된 나 같은 경우 탈 때마다 묵직한 허벅지 고통이 사이클을 가장 싫어하는 종목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이클의 최대 적은 오르막과 바람인데 오르막은 내리막이라는 보상을 주지만 거센 바람은 대책이 없다. 첫 바퀴부터 바람이 거세다. 거리를 늘려 나갈수록 허벅지의 고통도 가중되고 바람도 점점 더 거세졌다. 속도는 떨어지고… 언제까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야 하는가?
큰 꿈을 가져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아무리 큰 꿈을 가져도 모두 스티브 잡스 나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의 분수를 뛰어 넘는 무모한 꿈은 성공은 고사하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행복이고 자기 만족이다. 대부분의 불행은 남과 비교하면서 생겨난다.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노력만 가지고 되겠는가?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기 싫다면 자신의 분수를 알고 받아드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마추어에게 대회는 취미이고 축제일 뿐이다. 예전보다 에이지 부 선수들의 기록이 너무 좋아 졌다. 경쟁이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을 때 재미도 있고 능력도 향상 된다. 나이 20살 이하 선수들과 경쟁하는 듯한… 아무리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되어 질 때 경쟁을 통한 발전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를 뛰어 넘는 초인적인 기록은 한, 두 번 다른 선수에게 자극을 주는 단계에서 가장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02: 29: 46)
런(20km):
Don’t think… RUN. 생각이 많은 사람은 뛰지 못한다. 뛰는 고통에 비해 재미나 얻을 수 있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뛴다는 행위는 우리 원시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가장 값진 유산이다. 많은 준비나 돈 없이도 우린 언제나 어디서든 뛸 수 있고 짧은 시간 투자로도 충분한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이클 끝나고 아픈 허벅지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천천히 뛰었다. 얼마 가지 않아 256번 외국선수와 황지호에게 추월 당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삼종 마지막에 하는 20km 런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나의 추월을 처량한 눈빛으로 지켜봐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속도를 조금씩 높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속도를 높인다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 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거의 한 바퀴 정도가 남았다. 이제 뭔가 마지막 불꽃을 불살라야 할 때가 온걸 직감한다. 같은 에이지부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이범석은 아예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고 2위는 올해 에이지부에 올라 온 김승용, 그가 뒤 200m 정도에 경쟁자가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반환점이라고 생각한 시점에 그 엄주오(103번)가 150m 정도 앞서 가고 있었다. 그가 걷고 있다면 150m 따라 가는 건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도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입장이라면 그 150m 도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스피드를 내었다. 난 1km 뛰기를 좋아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1km 두 개 정도 시간을 재며 뛰어 본다. 나이가 들면 지구력보다 스피드가 떨어진다. 빨리 뛰는 근력은 아무리 장거리를 뛴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다행히 내가 따라오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속도는 더 빨라지지 않았고 난 주저 없이 그를 추월해서 결승점으로 골인했다.
들어와 콜라도 한잔 마시고… 그런데 앞서 간 김승용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가 코스를 덜 뛰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10분 정도 후 김승용이 들어왔고 날 보자 깜짝 놀라며 빨리 반 바퀴를 더 뛰라고 했다. 목에 걸었던 완주메달을 맡기고 바로 뛰쳐나갔다. 불행히도 앞서간 선수는 날 기다려 주지 않았고 내가 다시 그를 추월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1km 정도 남았을 때 한 여자선수와 막판 스퍼트,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건 잃어버린 메달에 대한 복수나 코스숙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나의 산만한 정신세계에 대한 반성은 더욱 아니다. 마지막 한계를 알고 싶어했던 우리 조상들의 DNA 가 내 핏속에도 흐르는지 알고 싶었던 나의 마지막 발악이었을 것이다. (01: 43:19) (Total= 05: 13: 59)
Finish Line:
나는 철인(鐵人) 이다 그러나 여기에 오면 철인(哲人)이 된다. 가장 무식한 운동이 가장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든다. 철학은 “인간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하버드대학을 나와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여기에 오면 쉽게 풀린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능력은 없지만 경험으로 증명시킬 수는 있다. 일상생활에서 1분은 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를 통과하기 전 마지막 1분은 정말 길다는 것. 시간이란 개념을 단지 기계적인 시계에 의지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도 모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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