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철인삼종경기 후기 66 (2015.8.23) 철인 이광원
어떨 때 글 쓰는 건 정말 피곤하다. 특히 똑 같은 루틴으로 되풀이 되는 경기후기를 작성한다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 질 때도 있다.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작가 조지 쉬언 처럼 철인삼종을 철학적 영적 체험 수준으로 표현할 만한 지적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경기가 끝난 뒤 후기를 쓰지 않으면 숙제를 마치지 못한 학생처럼 불안하고 초조해 진다. 더 시간이 흘러 머리 속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온통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2015.8.22
사실 경기보다 더 힘든 건 경기 전날 대회장으로 이동하고 모르는 고장에서 알지 못하는 모텔을 찾고 긴장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잠을 설치는 따위의 일일 것이다. 인생살이가 자꾸 복잡해 지다 보니 simple 하게 살고 싶은 현대인의 속성인지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다.
2015.8.23
온도에 민감한 물고기 마냥 인간도 온도에 대단히 민감한 동물이다.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덥고 창문을 열어두면 시끄럽고 밤새 뒤척이다 4시반 경 일어나 어제 저녁에 사둔 떡과 바나나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는 것도 큰 스트레스이다.
안개 자욱한 호수공원 호수에 650명의 철인들이 모였다. 1회 대회이고 중학생 스프린터 코스도 동시에 진행해서 인지 30분 이상을 뒤에서 기다려 출발하게 되었다.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치고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오늘 시합의 운세를 가르는 지표는 시합 전 수영워밍업에 있다. 수영이 편하지 않고 짧은 거리를 수영하는데도 숨이 탁탁 막힌다. 오늘 시합이 잘될 것 같지 않는 불길한 예감이 날 불안스럽게 만든다.
수영(1.5km):
대회를 처음 치르는지 주최측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통상 같은 수모를 쓴 그룹은 같이 출발하고 1분 간격으로 연속해서 출발해야 하는데 앞에 출발한 중학생 선수들을 기다린다고 출발시간이 제 각각이다. 뒤에서 출발해서 인지 앞서간 선수후미와 수영 끝나는 시간까지 몸싸움이 계속되었다. 혹자는 몸싸움이 싫어 라인에서 멀리 떨어져 수영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더 먼 거리를 수영해야 하고 전방을 계속 확인해야 하는 불필요한 동작을 취하게 되어 좋은 기록을 기대하기 어렵다.
수영은 자리싸움이다. 라인과 30cm 정도 떨어진 정도에서 옆 라인을 눈으로 확인하며 갈 수 있음 최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은 위치라면 다른 사람도 역시 좋은 위치일 수밖에 없고 그 황금 코스엔 언제나 선수들이 몰려있다. 이들과의 몸싸움이 오늘의 기록을 결정짓는 최고의 변수가 될 것이다. 몇 백 미터를 싸우며 가도 절대 양보하지 않는 독종을 만나게 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진다. 먼저 가라고 보내도 속도도내지 않고 내가 속도 내어 앞서려면 몸으로 진행을 방해하고… 아 오늘 일진이 아주 사납다. (0:28:57)
사이클(40km):
650명이 8km 가 채 되지 않는 평탄한 짧은 코스를 5 바퀴를 돌아야 한다면 사이클코스로 좋은 설계는 아니다. 더욱이 일부 구간은 바닥이 돌 조각으로 되어 사이클이 심하게 흔들리고 스피드메타 메모리가 지워지거나 물통이 떨어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북한의 지뢰만행으로 갑짜기 바낀 코스 라 해도 이런 도로를 시합구간에 포함시켰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10년 넘은 타이어를 끼고 혹여 펑크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는 사람에겐 최악이다. 완전 속도를 25km/h 정도로 떨어뜨려야 했다. 그나마 펑크가 안 나고 경기를 마칠 수 있었다는 데 감사 할 따름이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잘한다는 건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코스가 나빠 사이클 기록이 나쁘다고 자위하고 끝내고 싶지만 다른 선수들과의 기록 차이가 생각보다 너무 크다.
1. Battery 를 바꾸어 달라고 스피드메타 LCD 화면이 깜박이는 걸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방치했다.
2. 10년도 넘은, 언제 펑크날 지 모르는 시합용 바퀴 타이어를 갈지 않았다. 타이어는 기록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선수가 좋은 기록을 기대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큰 시합이던 작은 시합이던 우린 시합을 통해 겸손을 배운다. 일위와 거의 5분의 기록차이가 낳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1:05:15)
런(10km):
초반에 너무 늦게 뛰는 버릇을 이번만큼은 용서해 주고 싶지 않았다. 바꿈터를 벗어나자 속도를 조금 높였다. 너무 힘 든다. 몸이 적응되기 전에 빨리 뛰는 것보다 힘든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그 고통조차도 바로 적응시켜 버린다. 3바퀴째부터는 속도를 더 높였다. 첫 바퀴째 날 추월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독종 훈련 파트너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런에서 만큼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4바퀴째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그 선수를 잡고 계속 뛰었다. 피니쉬라인이 가까워 오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나이가 들면 지구력보다 스피드가 떨어진다. 매시간 떨어지는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짧은 거리를 빨리 뛰는 건 장거리를 천천히 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난 200m, 1km 달리기를 즐겨 한다. 폭발할 것 같은 심장의 고동소리, 이게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이상을 달릴 때 우린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내 영혼이 내 몸을 벗어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아마 그 뒤엔 달콤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0:43:24 Total= 2:17:35)
피니쉬라인:
사이클 두 바퀴 째 나를 앞서 간 김승용선수를 만났다. 난 그가 일위고 내가 이위쯤 될 꺼라고 자만했다. 600번대 선수한테 자기가 추월 당했다고 했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결과를 확인하고 아연했다. 예전에 한번도 진 적이 없던 선수들이 일, 이위를 차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명단을 확인할 때도 그들의 이름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경쟁심을 버려야 행복해 진다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진다는 걸 두려워한다. 질 수 있다는 당연한 현상을 받아드리는 데 인색한 게 우둔한 인간의 속성이다. 쥐꼬리 만한 훈련 량으로는 앞으로도 좋은 기록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김영주 15-09-0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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