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전국대축전 철인삼종대회 후기 63 철인 이광원
먹고 자는 지극히 단순한 본능적 활동만으로도 생을 즐기는 동물과 달리 고등동물 인간에겐 충족시켜야 할 욕구가 너무 많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 오늘의 문명을 이룩했지만 이 개화된 문명를 거부하고 원시인간들의 고통스런 먹이활동을 흉내 내는 족속들이 오늘의 triathlete 이 아닐까. 극단의 고통 속에서 희열을 추구하는 메조히스트들… 이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막연한 충동은 마약 같은 대회를 통해 바로 희석되어 버린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걸까?
훈련:
가족 친구들의 저주와 만류에도 삶의 모든 것 인양 훈련에 몰두했던 적이 있었는데, 운동하는 게 너무 힘들고 싫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제 지쳐 버린 느낌이다. 대회가 있는 주 수요일 아침 장거리 수영이 너무 걱정되어 1500m를 한번이라도 하고 시합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하늘이 노래졌다. 수영하는 게 이렇게 힘 든 일인지…
육체는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가 없는 사람에겐 모든 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 뿐이다. 매일 아침 25년 동안 수영하며 각종대회에 나가 회득한 87개의 메달이 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오늘의 수영기록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조금만 나태해도 이 운동은 용서를 해주지 않는다.
2015. 5.17
대회비 없고 단복도 준다는 달콤한 유혹에 서울대표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하늘은 청명하고 온도도 적당해서 시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더욱이 철인경기의 메카로 자리잡은 여주는 차도 없고 도로가 넓어 가장 안전한 경기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도 대표 10명 내외로 구성되어 전체 선수도 100명 미만이다. 시합은 9시부터 시작되었다.
수영(1.5km):
보통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는 코스가 보통인데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들어주려는 배려로1.5km 차로 이동하여 한강 기슭에서 주의사항을 듣고 회장님의 개회선언 이후 바로 시합이 시작되었다. 걱정했던 대로 수영이 너무 힘 든다. 안 나와도 되는 경기를 괜히 나왔다는 후회와 잠시라도 육지에 발을 딛고 서고 싶은 충동이 가시지 않는다. 라인은 아예 없고 3년도 더 된 뿌연 수경덕택인지 부표도 보이지 않고 주위에 선수들도 거의 없다.
기록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여길 살아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간절했다. 100m 수영하는 사람에겐 1500m는 너무 먼 거리가 틀림없다. 수업시간에 앉아있다고 다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다. 집중력이 문제다. 기진맥진 사경을 헤매다 오른쪽에 콘크리트 난간을 발견했다. 난 나보다 더 늦은 선수는 없다고 확신했는데 내 뒤로도 많은 선수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0:29:58 T1: 0:02:48)
사이클(40km):
살아서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 나왔다는 기쁨도 잠시, 도로엔 거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몇몇 선수들이 날 추월했다. 어느 정도 심신이 안정되자 수영에서 잃어 버린 기록을 만회해야겠다는 절박함이 허벅지의 고통도 잊게 만든다. 조금씩 속도를 높였다. 일주일 두 번의 짧은 훈련이지만 바람 부는 미사리에서의 인타발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거리는 조금 짧은 느낌이다. (38km정도) (01:06:37 T2: 0:00:46)
런(10km):
달리기에서 내가 발견한 법칙이 하나 있다. (일명 Won’s Rule ) 왜 사람들이 빨리 달리지 못할까를집중적으로 연구하던 중 극적으로 발견한 것인데 아직 세계인증절차는 받지 못했다. 달리기에서 속도를 높이면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고통이 커진다는 법칙이다. 대부분의 경우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육체적 근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기록을 못 내는 이유는 바로 이 고통을 감내하려는 의지 결핍 때문이다 고 확신한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은 다 다르다. 삼종 마지막 종목인 런은 바로 육체적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고통을 누가 잘 견디느냐를 평가하는 경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참는 데는 상당한 철학적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마 이 경기가 마지막 참가하는 올림픽경기라면 모두 더 좋은 기록을 낼게 틀림없다.
경쟁자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여자선수 한 명이 앞에서 뛰고 있었다. 이제 1km 가 남았다. 모든 힘을 쏟고 대회를 마쳐야 미련이 덜할 것 같다. 속도를 높여 그 선수를 추월했다.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통스럽지만 속도를 좀더 내었다. 200m 정도를 갔을 때 더 이상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뒤돌아 얼마나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닐 것 같다. ( 0:46:23 Total = 2:26:30 )
Finish Line:
이생에 지옥과 천국의 경계선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우린 어릴 때 정말 가난해도 아무 불평없이 즐겁게 살았다. 결코 돈이 삶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 보다 몇 십 배 잘 살게 되었지만 돈 때문에 받는 고통은 더 심해졌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건 없다. 항상 상대적이다. 기쁨이란 가치도 슬픔이나 고통 없인 느낄 수 없다. 우린 언제까지 섬광 같은 짧은 환희를 얻기 위해 마약 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
서울시는 2위함으로 경기도의 4연패 저지에 실패했다. 아직 60도 안된 사람이 받아서는 안될 상을 하나 받았다. “최고령상” 기쁨보다는 서글픔이…. 이제 겨우 반정도 살았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 받을 충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최측의 배려가 뼈에 사무치게 괴씸하다. 은퇴하라는 얘긴지 ㅋ
http://triathlonman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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