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Ironman 70.3 구례 철인삼종경기대회후기 62 (2014.10.04) 철인 이광원
한국사람에게 있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마 세종대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약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아 우리가 아직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면 정말 잠시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임에 틀림없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한글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을 글이란 매체를 통해 나타낼 수 있다. 글이 없는 민족은 역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역사란 현시대를 사는 사람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나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 갈 후손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기록이란 국가나 개인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 남태평양의 작고 아름다운 섬 PALAU 에서 찍은 사진 )
훈련:
거의 매일 주기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Triathlete 에게 일주일의 공백은 치명적인 기록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일주일간의 Palau 다이빙투어로 망가진 몸을 일주일 만에 회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작정 휴식을 취할 수도 없고 적당히 운동하며 컨디션을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일주일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대회만을 위해서라면 최소 대회 2주 전에 여행 Schedule 을 잡아야 할 것 같다.
2014.10.03
경기- 2월 달에 다친 팔이 아직도 아프고, 구례- 혼자 가기는 너무 먼 거리다. 농부학교에 참가해야 한다고 가지 않겠다는 와이프를 윽박질러 지옥으로 가는 동반자로 삼았다. “불쌍해서 가준다”는 치욕적인 말에 꼬리를 달 여유가 없다. 결혼식이 있어 9시 넘어 마지막으로 구만재 저수지에 사이클을 거치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 먹을 떡과 모텔을 찾기가 쉽지 않다. 10시 넘어 구례 시내 작은 여인숙 하나를 겨우 얻고 떡집은 전부 문을 닫아 마트에서 빵과 바나나를 살 수밖에 없었다.
2014.10.04
5시경 일어나 시합에 사용될 탄소화물을 입 속에 꾸겨 넣었다. 빵이 너무 달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바나나 두 개 먹고… 수영시작 하기도 전에 배가 고파 오늘의 시합이 걱정된다. 시합은 8시 부터다. 내년 오스트리아 Ironman 대회 참가권이 걸려 있어 외국인도 200명 가까이 참가한 것 같다.
수영:(2km):
안개 자욱한 구만재 저수지는 상당히 몽환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였지만 전투하러 온 사람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1시간이나 대회 출발시간을 늦추었지만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거리를 800m 정도로 줄여 대회가 시작되었다. 주최측의 처사에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물속에 들어 가서야 WTC의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인은 애초에 없었고 저 멀리 부표가 있다는 데… 보이지도 않는 부표를 항해 무작정 수영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안보이고 앞 사람만 보였다. 앞사람만 따라 갔다. 달리 다른 방법도 없어 보였다. 믿었던 앞 선수가 전혀 다른 코스로 가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한참을 헤매다 탈출… 주최측에서 500m라는 거리를 거의 1km 정도의 기록으로 수영을 마쳤다. (0:19:42)
사이클(90km):
수영 마치고 바꿈터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길다.(T1: 0:04:48) 사이클코스는 안전하고 언덕도 거의 없는 평탄한 코스로 2바퀴 반복하게 되어 있다. 작년은 대회 내내 비가 내려 섬진강 따라 펼쳐진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느낄 여유가 없었는데… 강 따라 늘어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자태, 섬진강의 짙은 녹색물결이 눈 속에 빨려 들어 왔다. 기온도 적당하고 사이클 타기는 최상의 조건처럼 느끼기도 잠시 후반으로 갈수록 왼쪽 무릎이 아파왔다.
남한산성 마지막 가파른 언덕을 기아를 무겁게 놓고 댄싱으로 만 올라가는 것을 특수훈련쯤으로 생각하고 악을 쓰고 몇 번 올라간 게 화근인 것 같다. 댄싱은 가볍고 짧게 해야 무릎을 보호할 수 있을 것 같다. (2:43:02)
런(21km):
이 번 만큼은 달리기를 좀 잘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너무 부진해서…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마음속으로 1시간 45분을 목표시간으로 잡았다. 처음 10km 까지는 거의 계획대로 뛰었다. 반정도 뛰고 화장실을 갔다 오자 뒤에 따라오던 유진형 선배가 바로 뒤에 붙어 따라왔다. 철인운동 시작할 때 이 선배는 내게 거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나이도 많으면서도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기록과 관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 누가 나를 따라 온다는 건 아주 피곤한 일이다. 차라리 그가 나를 추월해 가기를 바랬지만 그는 앞서가지도 내가 떼어 내려 속도를 내도 떨어지지도 않았다. 10km를 넘어서자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는지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고통스럽다. 5km 정도 남았을 때 이제 끝을 봐야 할 시간이 온 걸 직감했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다리 위를 속도를 높여 뛰었다.
그도 스피드를 내어 내 뒤에 바짝 붙어왔다. 다리를 건너자 지쳐버린 건 그가 아니고 나였다. 그가 나를 앞질러 뛰기 시작했다. 스퍼트를 계산하고 있었지만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한 주 8km 두, 세 번 뛰는 훈련량으로 21km는 내게 너무 먼 거리였다는 걸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100m 정도 거리는 끝내 줄어들지 않았다. 정신도 육체의 일부분일 뿐이다. 강한 정신력은 부단한 훈련에서 나온다. (01:52:46) (Total= 5:00:15)
Finish line:
62번째, 올해 마지막 대회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이지부 3등) 취미란 재미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철인삼종보다 재미있는 게 사실 너무 많다. 잦은 부상과 사고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상황에서 왜 악을 쓰고 대회에 나가는 것일까? 취미라고 설명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전생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의식인가? 고문당하는 동료에 대한 미안함?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한다는 자부심? 특별히 꼭 집어 이거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아마 내년에도 또 중독된 사람처럼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거리고 있을 꺼 라는 막연한 확신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7시 시상식까지 기다릴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왔다. 차가 너무 밀려 운전하는 와이프의 심기가 몹씨 불편해 보였다. 대회비 얼마 냈는지를 물었다.
“21만원”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고 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를 알아 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오는 내내 시합 끝나고 멀리서 응원 나온 가족들에게 국수를 못 먹게 한 것, 피니쉬라인에 들어 오는 선수를 찍지 못하게 하고 사진 팔아먹는 것, 멀리서 온 선수를 생각해서 시상식이나 만찬은 시간을 더 당겨 하지 않았다는 것, 등등… 내년에 참가는 절대 어림없다는 말이 그냥 협박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가정의 행복을 깨면서 까지 대회에 나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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