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처럼 넓고 깨끗한 토고저수지, 광활한 철원평야의 평화스런 모습을 바라보며 DMZ를 넘나들며 사이클 탈 수 있고, 어릴 때 외갓집에서나 본적이 있는 정겨운 개울을 보며 뛸 수 있는 유일한 대회, 이미 우리 주위에선 사라져 버린 어릴 적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철원… 1년에 한 번만 대회에 나가라면 난 철원대회를 선택할 것 같다.
삼종시작하고 연례행사처럼 매년 참가했었는데 이번 철원대회는 3주전에 있었던 사이클 사고로 가는 주 수요일까지 참가여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영만 할 수 있으면 갈 수있겠는데… 다행히 오른쪽손가락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걱정은 되었지만 상처는 물에 들어가도 괜찮다고 판단되었다. 그래 완주라도 할 수 있음 가야지…
회복훈련
자신감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일은 육체적인 훈련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이다. 사고 후 8일 동안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 알 수 없는 절망감이 엄습해 왔다. 9일째 달리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집 앞 일자산을 한 바퀴 천천히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아직 일어서면 모든 피가 다리로 몰리는 듯한 고통과 무쇠덩어리를 단 것 처럼 무겁다. 사고 후 17일 만에 사이클을 끌고 밖에 나왔다. 왠지 어색하고 무섭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오른쪽 팔꿈치에는 보호대를 차고… 아침에 대회 가는 날까지 4번 정도 검단산을 한 바퀴씩 돌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쏟아지는 폭우가 그마저도 방해했다.
7/26(토)
비가 내려 사이클은 포기하고 짐을 꾸리는데 와이프도 가겠단다. 춘천대회 때처럼 임송운, 이호정부부가 모는 차를 타고 철원으로 향했다. 반은 이북이라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작년 철원대회 때 민간인에게 공개되었다는 토고저수지에 도착하여 800m 정도 수영하고 대회장인 고석정 관광지 근처에 방을 잡았다.
출전선수들 명단을 봤다. 최근에 수영이 수직으로 급상승(?)한 이재범, 연습부족으로 그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7명의 일본선수들이 복병처럼 보였다. 그들은 내가 한번도 대적해 보지 못한 적이기 때문에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 입상여부는 그들 손에 달려 있다.
7/27(일)
대회 날 아침 우울한 회색 빛 하늘을 본다는 건 큰 행운이다. 7월말의 강한 햇빛에 온통 피부가 화상 입은듯한 고통을 당하거나 쏟아 붓는듯한 소나기로 대회마저 취소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수영이 있는 토고저수지로 가기 위해 주최측에서 준비한 버스를 기다리는 중 운 좋게 Ironstar 라는 사이클가게를 새로 시작한 박병훈 프로의 차를 타게 되었다. 경기 중 콜라를 많이 마시라고 했다. 빨리 흡수되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게 에너지젤 보다 낳다는 얘기.
수영(2km)
깨끗한 저수지를 둘러 산 장엄한 산들이 운무와 적당히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자아낸다. 철인대회 수영을 위해 여기보다 더 이상적인 곳은 없는 듯이 보인다. “하루를 살아도…”란 유행가 가사처럼 한번을 하더라도 여기서 헤엄치고 싶다. 몸싸움 때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 손가락이 부딪힐까 걱정했었는데 500명 정도의 인원에 한 바퀴로 장소를 넓게 사용해서 인지 300m 정도만 조금 복잡했고 몸싸움은 거의 없었다. 큰 어려움 없이 수영을 마쳤다. 작년보다 거리가 더 길어진 것 같다. (0:39:47)
사이클(90km)
허벅지가 터질듯이 아프다. 그 동안 만들어진 근육이 쉬는 동안 많이 풀려버린 것 같다. 도저히 이대로 90km를 탈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15km 정도 타니 고통이 많이 사라졌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통도 시간이 지나 적응되면 일상적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우리가 훈련이란 과정을 통해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원동력도 바로 이 적응력의 결과이다.
최근 금강산 관광 중 북의 경비병에 의해 총상으로 사망한 동포의 사고 때문인지 작년 코스가 갑짜기 많이 수정되었다. DMZ를 통과하는 구간이 줄어 들며 같은 코스를 두 번 도는 부분이 생기며 거미줄처럼 코스가 복잡해 지며 3km 정도가 더 늘어난 것 같다. 허벅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엉덩이, 팔, 목 안 아픈 곳이 없다. (2:51:59)
런(21lm)
똑 같은 거리인데도 여러 번 반복하면 더 길고 지루하게 느끼는 게 인간인 모양이다. 작년 5바퀴 코스를 3바퀴로 뛰게 배려한 덕분인지 지루함은 덜했다. 바꿈터를 벗어나려하자 작년 일위 했던 채희영이 들어섰다. 런 시작과 더불어 오른쪽 배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천천히 뛰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채희영이 앞질러 나갔다. 작년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1.5km 정도 뛰자 통증이 가시었고 그보다 더 잘 뛸 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에 주저없이 속도를 내어 그를 바로 추월하고 속도를 내어 그와의 거리를 벌이기 시작했다.
경쟁자를 추월할 때는 몇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다. 추월했는데 다시 추월당하면 거의 다시 추월하기는 어렵다. 추월하면 경쟁자가 따라올 의지를 완전히 접을 수 있게 초반에 거리를 충분히 벌여 놓아야 한다. 거리 차가 얼마 나지 않으면 경쟁자는 더욱 힘을 내어 따라오게 되어있고 앞선 자가 도리어 먼저 지처 버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고개를 내밀면서 뛴다는 게 말 못할 고통으로 다가왔다. 좀 속도를 늦추거나 걷는다면 고통을 경감시킬 수는 있을 것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늘리는 것 외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일초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 빨리 뛰는 방법밖에 없다. 아무 감각없는 동물처럼 미친듯이 결승점을 항해 뛰어 갔다. (1:39:14) (Total 5:10:59)
결승점
우리가 자유롭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구속을 경험해 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깨닫기 위해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체험해 보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다.
입상
예상대로 이재범이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우승했고 내가 준우승, 일본선수가 삼위 작년 일 위한 채희영은 4위를 한 것 같다. 대회엔 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순위는 언제나 바뀔 수 있다. 부상에도 무리하게 출전한 건 빨리 부상의 악몽에서 벗어 나려는 나의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 잠시 안일한 타협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나약한 인간으로써 그게 두려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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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웅 |
::: 후기가 '리얼감동' 그 자체입니다..^^ 선배님이 그동안 쓰신 후기들만 모아 보아도 대회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다시금 입상을 감축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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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상 |
::: 부상중에도 준우승이시라니 진정한 아이언맨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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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초리 |
::: 매번 느끼지만, 광원형님 대단하십니다. 형님의 정신력 반만 따라가도 좋으련만....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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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훈 |
::: 부상만 아니었음 1위 하시는건데... 대단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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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
::: 형님의 성실성, 하고자하는 집념, 그리고 정신력...본받고 싶습니다. 입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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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미 |
::: 입상 축하드립니다.. 시상식을 못보고 철수하게되어 죄송하고...선배님 후기는 늘 저의 게으름에 충고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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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
::: 축하합니다. 언제나 본보기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 성실함의 반만 배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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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맹 |
::: 후기도 언제나 명품~ 이제 나가면 입상, 형님, 축하도 지겹우시겠는데요??ㅋㅋ 그리고, 사진 다운이 안됩니다. 가능함 메일로 부탁^^ bucky@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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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
::: 한번 입상에 오르기까지만 어렵고 그 다음부턴 그냥 대회만 나가면 자동으로 입상 하시는것 같아요^^ 저는 반도 아니고 십분에 일이라도 닮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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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호 |
::: 부상후 화려한 재기 축하드림니다. 가족과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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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축하드립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시상자 발표가 없어서 그냥 왔더니...
이호정 ::: 부상에 몸으로 연습도 못하셨다고 걱정하시고 대회 임하셨는데, 입상까지 대단하세요
박용수 ::: 축하드립니다..광원형님...요즘 나가시면 입상 하시네요...왕 축하~
오영제 ::: 축하합니다. 형수님 오신 보람이 있네요.
조재형 ::: 달릴때 힘이 넘치시던데.......축하드리고 이제 몸좀 추스리세요^^
임청하::: 정말 대단하십니다..왕 추카추카드리구요 웃음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도할께요
김문겸 ::: 부상으로 훈련도 제대로 못 하셨을 텐데 대단하심니다. 짝!짝짝!
유태웅 ::: 광원선배님이나 수동선배님, 모두 부상당해도 실력은 결코 죽질 않는군요,..^^ 진정한 고수가 아닌가
싶어요,..무탈완주와 입상,,모두 축하드립니다...
박인석 ::: 왕축하. 태안에서 또 한판해야지? 3종은 기쁨이 기본으로 3배! 가자 태안으로!
윤승환 ::: 내년 쯤이면 집에 트로피방 하나 맹글어야 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박용태 ::: 축하드립니다... 형수님도 오셨는 데 보람이 있으셨군요.
황희상 ::: 축하드립니다~
이익재 ::: 멋~~~있다! 축하드립니다
정일선 ::: 입상 축하드립니다. 아직 부상이 다 완쾌되지 않으셨을텐데, 암튼 대단하십니다.
임송운 ::: 부상에도 불구하고 철인 정신력으로 입상하신 광원형님 존경합니다. 부상빨리 완쾌하시고
얼른 회복하세요.
이영미 ::: 언니까지 오셔서 보람찬 하루 되셨네요.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