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철인대회가 열렸던 2008년 9월 7일은 네게 인생의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타이어 빵구 때문에 일년 동안 혹독하게 준비한 대회를 완주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슬픔이나 그걸 통해 인생의 새로운 가치와 진한 우정을 알게 되었다는 건 완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인지 모른다.
9/6 (토)
6시에 임송운, 이호정부부가 모는 차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다. 집을 떠나 멀리 여행한다는 건 즐거운 일인데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태안에서의 불운을 예감하게 하는 전조인지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에서 수영1km 정도하고 사이클 한 바퀴(약 33km) 탔다. 바람은 조금 불었으나 평지가 많아 코스는 무난하고 기록이 잘나올 것 같다. 계획대로 5시간 50분 정도에 타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 알 수 없는 상념이 정신을 어지럽게 한다. 알만한 건 다 안다는 불혹의 나이가 지난 지도 십 년이 넘었건만 신선처럼 살지는 못할 망정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9/7(일)
4시 반에 일어나 어제 저녁에 해둔 찹쌀밥을 먹고 대회가 열리는 학암포 해수욕장으로 갔다. 6시쯤 도착했는데 사진 한 장 찍을 시간 없이 바쁘다. 700여 선수들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해변에 늘어서 있다. 긴장감이 폐부를 찌른다.
수영(3.8km)
정각 7시 시작을 알리는 총성에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바다로 뛰어 들었다. 초반은 조금이라도 빨리 지옥을 벗어나려는 선수들로 인해 항상 복잡하다. 출발하고 300m 정도가 수영의 성패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 같다.
정신없이 팔을 휘두르는 초보자에게 이 구간은 죽음과의 입맞춤이 될 수도 있다. 수영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선수 대부분이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걸 보면… 짠 바닷물도 한 모금 마시고 죽음의 구간을 벗어나 바다속에서 축구공 2배나 될 것 같은 해파리 보고 놀란걸 제외하면 편안하게 수영을 마쳤다. (1:17:41)
사이클(13km)
씩씩하게 바쿰터를 벗어나 사이클을 탔는데 나가지가 않는다. 어제 뒷바퀴허브가 흔들린다고 해서 샵에서 점검을 받았는데 뒷바퀴를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은 것 같다. 대충 조이고 탔는데 언덕에서 너무 힘들어 내려서 보니 뒷바퀴가 프레임에 닿아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난다. 다시 조이고 출발 오토바이처럼 날라가는 느낌이다. 날씨도 좋고 어쩐지 오늘 기록이 잘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 낙관적인 생각도 잠시 출발하고 13km지점에서 피식하고 빵구가 나버렸다.
빵구와 포기:
그때까지만 해도 빵구가 내게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능숙한 솜씨로 준비해간 타이어를 갈고 바람을 넣었다. 급하게 서둘러서인지 꼭지부분이 부러져 버렸다. 아뿔싸! 일분이 급한데…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세워 26인치 튜블러 하나 갖다 달라고 얘기했고 곧 메카닉이 달려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곧 오리라는 나의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는지 초초한 시간이 한없이 지나갔다. 1시간 30분이 지나 메카닉이 차를 몰고 왔는데 전문 메카닉이 아니고 동호인 이정휘씨 였다. 타이어는 없고 임시로 때울 수 있는 접착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타이어가 너무 많이 찢어져 접착제로는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린 뒤 다시는 오지 않았다. 완주라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선수들이 몇 바퀴 도는 동안 “26인치 튜블러타이어 가지신 분”을 간절히 부르짖으며 찢어진 타이어를 흔들며 간절하게 타이어를 구걸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태안대회 참가 선수중 한명이 사이클타고 가면서 찍은 사진임)
선한 사마리인
지나가던 많은 윙 식구들이 몇 번이나 잔차에서 내려 도와줄 일이 없는지를 묻고 안타까와 했다. 어떤 이는 자기 잔차를 주고 싶다고 한다. 눈물나게 고맙다. 여기 그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싶지만… 내 마음속에 새겨 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잔차에서 내렸을까? 입상을 포기하며 이웃을 도와줄 여유가 내게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자신이 없다. 살아온 시간 반성이 많이 되었다. 누구를 도와준다는 건 남아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주는 행위이다. 내게 있는 작은 걸 나누어 줌으로써 상대는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겠다.
3시간 반이 흘렀고 태안에는 26인치 튜블러가 없다는 확신이 날 절망감으로 몰아 넣었다. 어떻게라도 완주만이라도 하려는 나의 간절한 희망을 접어야했다.
마라톤(42.195KM)
이미 대회는 포기했지만 이대로 그만 둔다는게 너무 억울하다. 마라톤이라도 해야겠다. 연습삼아 천천히 뛰었다. 여유있게 뛰니 대회가 너무 재미있다. 먹을 것도 먹고 다른 선수 응원도 해가면서… (3:30:48)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5번째 나의 킹코스 도전은 지극히 작은 부주의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오래된 타이어는 시합에 가지고 나가지 말고, 예비 타이어는 두 개를 준비하고 들고 넣는 펌뿌보다 선이 연경된 펌뿌나 폭탄을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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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상 2008-09-16 18:25:3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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