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션에서 바라본 해뜨기 전의 통영 바다)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그 첫 주에 시작하는 통영대회는 철인삼종경기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너무 멀고 험한 길이라 항상 참가를 망서리게 되지만 2003년 한산도에서 처음 철인경기를 시작했다는
그 모진 인연을 끊지 못해 매년 참가하게 되어 올해로 7번째를 맞이하는 것 같다.
부상과 사고
원하던 원치 않던 부상과 사고는 항상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잦은 부상과 사고는 경기력 저하
뿐 아니라 운동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바람은 시합에서 우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없이
건강하게 가정과 직장생활과 잘 조화하며 즐겁게 운동하는 것일 것이다.
나하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족저근막염이란 단어가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말이 되어 버렸다.
예전부터 오래 뛰면 발바닥이 아파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서버3 하겠다고 스피드를 올리고 훈련강도를 높이고부터 발바닥 통증이 참을 수 없는 수준으로 높아졌다.
병원도 가고 실리콘 신발창도 깔고 질경이 닳인 물도 마셔 봐도 전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쉬면 낳는다는데 돈도 들지 않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내겐 가장 어려운 치료법이다.
6개월이나 일년 정도 쉰다면 다시는 철인경기를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간단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없게 한다.
조그만한 방심이 큰 사고를 불러온다. 대회 일 주전 일요일 동료들과 사이클 중에 앞선 사이클 뒷바퀴와
부딪혀 넘어져 왼쪽 허벅지에 부상을 당했다. 좀더 조심하라는 신의 경고로 받아드리기엔 상처가 너무
크다. 경기를 일주일 앞두고…
5/1
장인생일과 대회가 겹쳐 온 가족들이 통영에서 모이기로 했다. 황금연휴를 나 때문에 원치 않는 곳에서
보내야 하는 처가집 식구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6시간 걸려 통영에 도착했다. 그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밤새워
술 마시고 얘기할 때 난 잠자리에 들어야 했고 그들이 꿈나라에 헤맬 때 난 뿌연 아침햇살을 맞으며 뛰고
있었다.
삐쩍 마르고 얼굴도 까맣고 머리도 짧아 산골에서 농사 짖다 온 사람 같아 아주 불쌍해 보인다는 말을
와이프도 모자라다른 식구들에게 조차 듣어야하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5/2
식구들은 거제도로 가고 난 도중에 통영으로 돌아왔다. 등록하고 수영을 했다. 수온이 차다.
장거리를 전혀 해 보지 않아 걱정이 된다. 백승엽씨가 잡은 민박에서 같이 자기로 했다. 방도 작고 샤워
시설도 없었지만 대회장과 가까워서 편리했다.
5/3
회색 빛 하늘에서 간간히 빗줄기가 떨어진다. 강열한 태양도 무섭지만 시합 때 비 내리는 것도 반갑지
않다. 사이클에서 사고의 위험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엘리트 선수들 출발이 있었고 3분 뒤
동호인 엘리트 선수들의 출발이 있었다.
수영:
작년 두 바퀴 코스를 한 바퀴로 만들고 출발을 넓게 해서인지 몸싸움은 별로 없었다. 힘 안들이고 오래,
빨리 갈 수 있는 수영을 터득하는 것이 나의 오랜 숙제였다. 그러나 이 목표는 에너지 불변의 법칙과
명백히 위배되며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걸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속도의 제곱으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우린 속도를 택할지 에너지를 택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빨간 등대를 돌아 온다고 해서 그쪽만 보고 계속 갔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앞서간 선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선수들이 오른쪽 방파제를 돌고 있었다. 거의 100m 이상 코스에서
이탈해 버렸다. 아뿔싸! 어찌 이런일이… (0:27:09)(T1: 0:02:49)
사이클:
작년 킹 코스 이후 한번도 타지 않던 먼지 자욱한 사이클을 미사리로 끌고 나온 건 4월, 연습이 너무도
부족하여 좋은 기록을 기대한다는 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고까지 있어서 대회 시작 전부터
좋은 기록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어렵게 언덕을 올라가도 내리막에서 기분 좋게 속도를 낼 수 없다.
코너가 너무 급하고 사고의 악몽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기록을 위해서 감수해야 할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1:08:37)(T2: 0:01:15)
런:
근 전환으로 1km 정도는 조깅하고 회복되면 속도를 높여야지 생각해 보지만… 더 빨리 뛰고 싶은 건
마음 뿐 속도를 높일 수 없다. 꿈을 꾸고 있는 듯 앞으로 뛰쳐나가려 발버둥치면 칠수록 누군가가 뒤에
서 날 끌어 당기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시합이 끝날 때 까지 계속되었다. 계속 추월 당한다는 건 발
바닥 통증 보다 더 큰 고통이다. (0:45:16)(Total 2: 25:04)
올해 같은 에이지로 올라온 두 선수가 2:13분대 기록으로 일, 이위를 차지 했다. 그 기록차이 만큼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슴을 쓰리게 만든다.
피시쉬라인: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곳이다. 신의 섭리를 깨치기 위해 모진 고통도 마다하지 않았던 선각자
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철인경기 보다 더 효과적인 건 별로 없을 것 같다.
오감을 가진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고통이아닐지.. 신은 왜 인간이 그토록 싫어하는 고통을 신과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시합은 이 고통과의 싸움이다, 타협할 것인가? 받아드릴 것인가? 받아 드릴때만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스키로에서 지원해 준 경기복 입고... 나,김형남, 최경수, 유희란, 김용희, 배미경, 홍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