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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과 친구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한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한가지를 버려야 하는 게 우리 인생이다. 어쩌면 공자의 중용이 가장 지키기 어려운 도리가 아닐까?
적당히…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잘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철인 운동하고부터 옛날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조차
만날 시간이 없다. 어떨 땐 그들과 나는 너무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운동하는 사람들
뿐이고 거의 매일 보는 사람도 그들 뿐이고… 이건 아닌데…
대구친구들이 한번 보자고 노래를 부르는데 갈 시간도 가서 술 먹을 용기도 나지 않는다. 아무리 운동이 중요해도 그들의
부름을 외면할 수는 없는데… 인간의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게 대구철인삼종경기
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대회도 하고 친구도 보고… 당장은 정말 좋은 계책처럼 느껴졌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 혼자 차 끌고 대구까지 내려간다는 게 내키지 않는다. 2시반 넘어 출발하여 거의 7시가 되어서
야대회가 열리는 대구 수성못에 도착했다. 등록하고 검차받고 수성못으로 갔다. 어둠이 깃든, 비 내리는 수성못엔 슈트입고
수영하는 철인 몇몇이 보였다. 날도 추운데 비 맞으며 수영하고 싶을까?
그들이 애처럽게 보인다. 주위친구들도 분명 나를 보면서 측은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이 들어서 삐쩍 말라
뭐 생긴다고 죽자 사자 그러는지… 동생 집에 보따리 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왜 이 먼 천리길을 혼자 내려와 이러는지,
밤새 비내리는 소리, 시합날 비오면 안되는데…, 잘해야 될텐데 또 통영처럼 형편없는 기록으로 완주하면 좀 쪽 팔리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잠을 설치게 만든다.
5/17
다행히 바람은 좀 불었어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7시경에 경기가 열리는 수성못으로 출발했다.
이미 작은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많은 차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거의 500m 이상 벗어난 도로에 차를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빌려온 뒷 짚바퀴에 바람이 들어 가지 않는다. 지오사이클로 끌고와 바람 좀 넣어 달라고 했는데…
그때부터 거의 40분 이상을 끙끙거리며 바람을 넣으려 했어나… 초조한 시간은 계속가고 수영도 한번 해봐야하는데…
결국은 포기하고 타이어를 갈 수 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사이클 거치하고 수성못으로 갔다. 전부들 나오고 있는데 뛰어
들었다. 200-300m 하고 쫒겨났다. 항상 출발 전은 아무리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바쁘고 긴장된다.
수영:
수온이 20도이기 때문에 엘리트와 동호인엘리트는 슈트를 입을 수 없다고 한다. 날씨가 많이 추운데…
사회를 맞은 강승규교수는 불쌍한 엘리트를 위해 박수를 치자고 제안했고 우린 비 맞은 강아지 마냥 부들부들 떨면서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처럼 수성못 출발점으로 향했다. 9시 정각에 입수!
이상하게 수영장에서 처럼 길게 우아한 폼으로 편안하게 수영하고 싶은데 시합만 시작되면 그게 안 된다. 팔은 풍차처럼
빨라지고 숨도 안트이고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정신이 없다. 거기다가 누가 발을 잡고 널어지기라도 하면
내 정신이 아니다. 어떻게라도 살아서 이 물속을 빠져나가야 된다는 집착만이 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추워서 포기한 사람도 있다던데 추위를 느낄 만큼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추웠나? (0:28:35)
사이클:
바람 부는 신천대로를 3바퀴 돌아야 한다. 허벅지가 터질듯이 페달을 밟았다. 한동안 속도계가 45km를 가르켰다.
난 사이클 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이클 내내 허벅지에 느껴지는 정말 기분 나쁜 통증 때문이다.
뭐 속도를 줄이면 고통도 줄어 들겠지만… 시합나와서 그럴 수는 없고 근육이 안 생겨서 그렇겠지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하는
희망만 없었다면 벌써 사이클을 팔아 버렸을텐데…
3류가요 제목 같은 “언젠가는…” 이란 그 맹랑한 단어가 고통을 참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버렸다. 30km 까지가 한계였을
까 평속 38km 까지는 거기까지였다. 같이 가던 에이지부 일 위한 임정수선수를 거기서 떠나 보내야 했다.
거리가 40km를 조금 넘는 것 같다. 내 속도계가 41.3km를 찍고 있다. (01:10:59)
런:
거의 황준호선수와 같이 바꿈터로 들어섰다. 런 시작하자 그가 바로 날 치고 나갔다.
고질적인 발바닥 통증외에 특별히 아픈 곳도 없는데 이상하게 뛰기가 싫다. 분명 더 빨리 뛸 수 있는 힘도 남아 있고 그래야
했는데… 무엇이 뛰어야 한다는 나의 의지를 허물어 뜨렸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어떤 화학물질이 뇌에서 나를 더 이상
빨리 뛰지 못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한 바퀴(2km) 돌고 나면 나아지겠지…
그러나 그건 생각일 뿐 마지막 바퀴만 정상적으로 뛴 것 같다. (8분37초) 43분에 뛰어야 정상인데.. (0:46:35)(Total= 02:26:09)
피니쉬라인:
의 기록이 더 궁금하다. 비록 사고도 있었고 연습도 부족했지만 통영에서 일위와 10분 이상 기록차이가 나고 여자 동호인엘리
트보다 기록이 더 나빴다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다행히 일위하고 기록차이가 7분, 물론 엄청난 차이지만…
그래도 많이 줄었다고 자위하며… 올해 에이지부에 올라온 선수들이 모두 1-3위를 차지했다.
세월의 허망함은 죽고 죽이는 처절한 야생의 세계에서 더욱 확연하게 두드려진다.
친구:
대회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몸도 피곤하고 서울에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모사야 나다 어디서 볼래…”
“어디있는데”
“수성못”
“거기는 왜”
“그런데 나 오늘 빨리 서울 가야 된다. 낼 결재할 것도 있고…”
“그라마 술도 한잔 못하잖아… “
그렇지 술도 못하지 나이 들어서 얼굴만 삐쭉 본다는 게 서로에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 질까?
“다른 애들 한테 얘기 안 했으면 그냥 가고 담에 보자…”
“그래도 되겠나?... ”
일년을 보자고 벼루던 만남이 무산되는 순간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려던 나의 계책이 빗나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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