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 인류의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의 형태로 발달해 왔다고 한다.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같은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해 버렸지만,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도전을 받았던 문명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토인비의 학설은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내게 있어 철인경기는 나태하고 무기력한 나의 일상에 대한 도전이며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 역시 나를 자극하여 더 높은 경기력은 갖게 하는 원천이다.
훈련: 철인경기를 직업으로 가지지 않는 한 생업을 무시하고 훈련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회사나 가족, 친구, 다른 취미 활동과 잘 조화를 이루며 훈련하며 기록을 향상시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 남보다 나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강도와 회복의 반복이 필요하다. 이 학습과정을 통해 심폐기능이 발달하고 필요한 근육이 생기는 것이다.
사이클이 작년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훈련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자위해 보지만… 탈 때 마다 허벅지가 터질듯이 아프다. 화요일, 목요일 아침 사이클 끌고 한강으로 나갔다 25km 정도의 거리를 1시간도 더 걸려 겨우 끌고오다 시피해야 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대회가 코앞인데 걱정이 태산이다. 토요일 그냥 쉬고 싶었지만 미사리훈련에 안 갈 수도 없어 가볍게 타리라 마음먹고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터질듯한 허벅지의 통증은 사라지고 사이클이 빨라졌다. “아! 사이클이 되네…” 잃었던 보석을 찾더라도 이 기쁨 만할까?
서울대회: 랭킹일위로 참가비가 면제되고 서울에서 실시한 대회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참가하고 싶은 대회는 아니었다. 일단 수영이 1km로 짧아 오로지 수영하나에 목을 매고 있는 내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여건이기 때문이다. 50대 출전선수 명단을 봤다. 정대회(참가안함), 황준오, 이재범 등 쟁쟁한 멤버들이 모두 출전하는 별들의 전쟁... 입상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이클만 작년 수준 같이만 된다면 달리기에서 한번 승부를 걸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5/25 결전의 아침은 밝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한 하늘이 성공적인 대회를 암시한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한술 들었어나 도저히 넘길 수가 없다. 바나나 두 개 쑥 덕 하나 어거지로 입에 쑤셔 넣고 대회가 열리는 여의도로 갔다. 물에 들어가 잠시 수영 연습하고 나와 열에서 백성엽씨와 잠깐 얘기하고 있는데 머리를 스치는 충격적인 사건… 칩을 빠뜨리고 그냥 온 것이다. 시계를 보니 10분 정도가 남았다. 슈트를 입고 그렇게 빨리 뛰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주차장에 가서 칩을 차고 돌아왔다.
수영(1km) 왜 수영을 1km로 하지 않음 안되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바다에 뛰어 들고 얼마 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좁은 한강에 부표를 띄워 사각 1km 직사각형을 만들었는데 인원이 거의 1000명에 육박하다 보니 어장 안에 밀집된 물고기처럼 수영할 최소한의 공간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더우기 100명 단위로 30초 간격으로 출발하다 보니 수영 끝날 때까지 몸싸움은 계속되었다. 몸싸움만 없다면 2-3분은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 처럼 느껴진다. 가까스로 아비규환 같은 곳에서 살아서 벗어 났다는 게 그저 고맙고 그나마 한 바퀴 인 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뿐이다. (0:19:53)
사이클(40km) 강변북로 일부 구간을 막아 사이클 코스로 만들어 두 바퀴 돌게 했다. 언덕도 없고 바람이 조금 부는 것 외에는 크게 어려운 코스는 아닌 것 같다. 어제 얻은 자신감이 사이클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주었다. 무리하지 않고 시속 35-45km 사이로 탔다. 올 들어 내내 아프던 허벅지도 멀쩡하고 사이클에 오토바이 엔진을 달은 듯이 쏜살 처럼 튕겨져 나갔다. 인간은 적응력이 강한 동물이다. 아무리 불가능하고 어렵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되풀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된다. (1:08:06)
런(10km) 코스가 무난하기는 런 코스도 마찬가지다 기록을 줄이고 싶다면 처음부터 뛰어야 한다. 근 전환의 유혹을 빨리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정신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육체는 움직일 수 없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더 빨리 뛰도록 만드는 것도 정신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더 뛸 수 있는 육체적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빨리 뛸 수 없다고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더 빨리 뛸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5분은 더 당길 수 있을 것이다. 경쟁자들이 뒤에서 나를 추격하고 있다.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모두 소진해 버리고 결승을 통과하고 싶다. 인간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고통을 괴로워하면서도 기꺼이 고통을 즐기고 그 속에서 크나큰 희열을 느끼는… (0:42:54) (Total= 2:10:53)
결승점: 불을 항해 아무 생각 없이 날아드는 하루살이 처럼 인간도 그런 존재가 아닌지 느껴 질때가 많다. 난 최근에 Free Dive Competition 에 관심이 많다. 8부문에 걸친 무 호흡 잠수게임인데 4분30초 동안 물속에서 꼼짝하지 않으면 1차 합격이고 63m 바다 속에 내려가 자기 이름표를 가지고 나오면 2차 합격이다. 합격이란 얘기는 기초 과정을 통과했다는 의미이고 상금 같은 건 없고 달랑 완주메달 같은 거 하나 준다.
훈련하는 동안 고막 나가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지독한 고통을 감수하는 걸까? 하는 의아함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트라이애슬런은 얼마나 행복한 운동인가 결승에 들어서면 환호하는 관중의 박수소리와 아리따운 장내 아나운서의 축하 멘트, 적당히 시간 안에만 들어와도 금도금된 메달도 걸어 주고…
우승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동호인 엘리트부에서 일위한 전태선 선수보다 20초 더 빨리 들어왔다는 사실이 더욱 감격스럽다. 경품으로 Polar CS-100 이라는 사이클 심박계 메타를 주었다. Free Dive Competition 에서 1차 관문을 통과한 한 선수가 메달 하나 받아 쥐고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 아침에 벼락 부자가 된다 한들 지금 우승의 기쁨보다 더 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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