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철인대회(2008.4.27) 2003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열렸던 나의 첫 철인삼종경기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못해 매년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올해는 가기 전날까지 참가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테니스대회에 나갔다가 다친 어깨부상으로 인해 수영하기가 너무 불편하고 통증이 심할 뿐만 아니라 4월부터 사이클 훈련을 시작하다 보니 사이클 탄 게 고작 몇 번에 불과 하고 2주 간격으로 나간 마라톤시합 후 회복을 잘못해서인지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가는 주 월요일 부천까지 가서 어깨 마사지 받고 화요일은 도저히 갈 수 없을 것 같아 연맹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만 가고 계속 받지 않는다. 공지사항을 보니 4/22-4/28 까지는 통영대회관계로 전화를 받지 않는단다. 35,000원(작년 동호인 랭킹순위에 의해 50%감면 받음) 아깝지만 할 수 없지… 4월27일 겹치는 사진촬영대회와 친구 딸 결혼식 중 어디로 가야 하나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통영대회 간사를 맞은 용환이 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 입금 안되었던데요” “아 그래 바빠서 깜빡 잊었네 금방 보낼께” 이런! 왜 못 간다 소리가 그때 안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저런 구차한 변명을 후배에게 하고 싶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에 6년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은 이 대회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4/26(토) 아무튼 9시 과천 관문체육공원에 모여 통영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너무 늦게 출발한 관계로 프로들 시합은 볼 수 없었고,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낮아 수영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통영 도착할 무렵에는 날은 개였으나 바람이 심하게 불고 바다에 들어 가기에는 수온(15도)이 상당히 낮았다. 숙소인 청소년회관에 짐을 풀고 등록하고 바다로 갔다. 손발이 시리고 바다에 들어 갈 수 없을 것 같다. 가까스로 300m 정도 수영을 하고 완주나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밤늦게 까지 술 먹고 얘기하는 소리, 주기적으로 귀신 울음 소리 같은 날카로운 금속성 쇳소리를 내는 문소리, 독서에 열중하는 회원이 켜둔 전등의 불빛 등이 나의 잠자려는 의지와 충돌하고 있었다. 잠자는 것 과 같은 부교감신경이 하는 일은 교감신경이 신경을 쓰면 쓸수록 잘 되지 않는게 일반적이다.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데 받아드릴 수 밖에… 4/27(일) 결전의 아침이 밝았다. 비도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나의 25번째 철인삼종시합이 막을 올렸다. 언제나 출발점에 서면 인간의 온갖 번뇌가 시작된다. 돈 들여 멀리 왜 여기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수영: (1.5km) 1000명 가까운 인원이 동시에 설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관계로 30초 간격으로 7개 덩어리로 나누어 출발시켰다. 나이 많은 것도 서러운데 마지막에 배치된 우리는 수영 끝날 때 까지 먼저 출발한 후미그룹과 계속 몸싸움을 벌려야 하는 불리한 입장이다. 그 누가 전투수영이라고 말했던가? 침몰직전의 배에서 떨어져 수온 15.5도인 차가운 바다에서 서로 살아남기 위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머리를 누르고 다리를 잡고 팔로 치고… 너를 놓아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이 우리 모두의 머리 속에 잠재해 있다. 작년 수영시합 중에 사망한 철인의 환영이 아직 이 바다를 떠나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살아서만 나가야지… 그건 화장실 갈 때 얘기이고 막상 바다에 떨어진 사람들은 미친듯이 팔을 휘두른다. 지금 그들에게 자비나 양보 같은 문화시민이 가져야 할 교양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일초라도 먼저 탈출하기 위한 목숨을 건 무지막지한 몸부림만 존재할 뿐이다. 나도 그들 틈에 끼여 필사의 사투를 벌인 끝에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가장 수온이 낮다는 4월의 바다가 얼마나 차가왔는지에 대한 느낌도 없이… (0:30:53) 사이클(40km) 25번의 연습으로 쌓은 능숙한 솜씨로 재빨리 슈트를 벗고 발을 닦고 양발, 슈즈, 고글, 헬맷, 번호표… 기계적으로 몸에 부착하고 사이클을 몰고 바꿈터를 벗어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 물에 흠뻑 젖은 경기복 – 한기를 느낄 만도 하지만 철인이란 단어 앞에 추위 때문이란 말은 너무 사치스런 말처럼 느껴진다. 해안으로 길게 뻗은 가파른 도로를 끙끙거리며 올라갔다. 연습을 너무 안해서 기록이 틀림없이 안 좋을 거라는 생각이 나의 속도를 제한하고 있었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난 분명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기록도 더 당길 수도 있는 힘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 틀림없이 작년 기록보다 더 잘 달릴 수는 없을 거라는… - 적중(?) 해서 작년보다 1분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다. 아주 멀쩡한 상태로… (1:17:52) 바꿈터: 두 번째 바꿈터로 돌아 왔을 때 첫 번째와 달리 내 주위의 사이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이클에 붙은 번호표가 안보이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내 자리를 찾을 수 없다. 바구니에 붙인 번호표는 엉터리로 뒤죽박죽이고 거치대에 붙은 종이표는 뒤쪽에서 붙여놓아서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빨리 내 자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이 심적 갈등을 더욱 조장시킨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무료 1분 이내에 벗어날 바꿈터에서 생애 제일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기자리를 표시한다고 자기가 가지고 온 빨간 수건을 매던 유희란의 비웃는듯한 모습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대회 한두번 한 것도 아니면서 그런거 왜 해요” 프로는 사소한 일에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0:03:09) 런(10km): 바꿈터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렀다는 한심함을 자책하며 런이 시작되었다. 겨우내 서버3 하겠다고 연습한 결과가 나타나면 분명 좋은 기록을 나타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 망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삼종에서 사이클이 제대로 안되는 사람은 런도 제대로 안된다. 사이클 연습이 안되어 효율적인 페달링이 안된 상태에서 좋은 런 기록을 기대할 수 없다. 좀더 빨려 달리 수 있을 것 같은 데 이상하게 속도가 안 난다. 마지막 가파른 언덕을 넘으면 바로 결승점이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미친듯이 달려 결승점을 통과했다. (0:45:04 바꿈터포함) (Total: 2:33:49) 피니쉬라인: 내 몸에 있는 한 방울의 에너지도 다 소진한 뒤에 여기를 통과해야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멀쩡히 살아 여기를 지나치는 나 자신이 미웠다.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저조한 기록에도 철면피하게 혹시나 하고 기록실을 얼쩡거렸다. 채희영씨가 삼등일 것 같다는 얘기도 있고해서… 한참을 서성거리다 기록을 정리하던 아가씨 곁으로 가 50대 기록을 확인했다. 1위 조규관 (2:23:43) 2위 이재범(2:25:04) 3위 황준오(2:25:25)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한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기록은 날로 진보한다. 어제의 기록은 이미 기록이 아니다. 철인은 다른 누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와 매일 싸워야 한다. 넘어야 할 새 산들이 생겨 운동이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 http://blog.paran.com/syskwl ) (대회 간사 맡은 정일성님, 최용환님 수고 많았고요 이번에 머리 올린 분들 축하합니다.) |
선현수 | :::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슬슬 몸 만드셔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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