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2008 설악트라이애슬런 후기 28



글과 트라이애슬런
인간에게 글이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고 감격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구를 제일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세종대왕이라고 답하는데 일초도 걸리지 않는다.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들지 않아 지금도 한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직하다. 자기나라 글을 가지지 못해 영어 알파벳을 빌어 자기나라 말을 표현하고 있는 나라도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글이 없다는 것은 문화가 없고 역사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글- 한글이 있어 너무 자랑스럽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소상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

아 왜 트라이애슬런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얘기로 시작해버렸나? 어째던 기록을 남긴다는 건 내게 대회 참가의 또 하나의 이유이다. 트라이애슬런 대회를 28번째 나갔지만 참가할 때 마다 그 느낌이 판이하게 달라 글 쓰는 소재로는 아주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대회 참가
대회참가를 어렵게 만드는 최대의 적은 이동하는 데 따르는 시간과 경비 등일 것이다. 일년에 한번 여름휴가 때나 갈 수 있는 속초는 두 시간 반 정도의 시합을 위해 가기는 뭔가 조금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번 서울대회에서 일등 했기 때문에 이번 대회부터는 동호인 엘리트로 분류되어 대회비도 없고 입상하면 상금도 준다는 데…

가기는 가야겠는데… 임송운, 이호정 부부가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무인도에서 예쁜 여자를 만난 것 이상으로 반가 왔다. 염치없지만 그들 차에, 그들이 예약한 콘도에,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대회를 치룰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6/14
11시 조금 넘어 픽업하러 온 부부의 차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엘리트”라는 단어에서 받는 느낌이 묘하다. 연맹에서 왜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난생처음 나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단어로 여겨졌던 엘리트란 단어가 내 이름 앞에 붙고 보니 야릇한 흥분과 스트레스가 소름 끼치듯 온몸을 타고 흐른다.

등록하고 수영이 행해지는 바다로 갔다. 파도가 조금 있고 날씨가 살살하다. 한 바퀴를 돌았다. 바다는 거칠다. 수영장에서 폼 잡으며 하는 수영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배운 대로 잘해보려고 해도 파도의 울렁거림 때문인지 통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허우적거리며 나가는 것 같다.



일찍 숙소로 돌아와 중 닭 두 마리로 만든 백숙을 먹고 책 좀 보다 9시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통상 멀리 회원들과 무더기로 오면 잠을 제대로 자기는 극히 어렵다. 큰방에 수십 명이 함께 자다 보니 밤새 술 마시고 얘기하는 소리, 코고는 소리 등이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화합을 위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시합을 위해서는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중독
이주 간격으로 계속 대회에 나가다 보니 심신이 너무 피로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부서질 것 같이 무거운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운동보다 회복이 중요한데 나이가 들수록 회복이 빨리 되지 않는 느낌이다. 한번 대회 나갔다 오면 이틀 정도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다리가 노곤하여 밤새 뒤척이다 날이 새는 경우가 흔하다.

“힘들어 그만 둬야지…”
“그래 잘 생각했어 힘든 운동말고도 재미있는 일 많이 있잖아… 테니스도 치고 사진도 찍고 여행도 가고 친구 만나 술도 마시고 얼마나 좋아…”
“나도 그러고 싶어”
“누가 하래”
“아니…”
“그런데 왜!”
“나도 몰라 내가 왜 그러는지…”

내 속에 있는 두 개의 인격이 서로 다투고 있다. 이번만 하고 이제 좀 쉬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보건만 대회 끝나기도 무섭게 또 다른 대회를 등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곤 한다. 내 스스로도 억제할 수 없는 상태를 우리는 중독이라고 부른다. 이것 끊으려면 정신과 의사라도 찾아가야 하나….



6/15
5시경 일어나 닭죽 먹고 경기가 열리는 속초 청호동 해변으로 갔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끼여 있고 시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처럼 보였다. 나이 순으로 번호를 부여하다 보니 거의 800번대나 900번 대를 부여 받았었는데 이번은 25번이라는 두 자리 수를 부여 받았다. 어제 서울에서 속초까지 그 먼 거리를 사이클로 올라온 유재형, 정환희씨가 우승하라고 한다. 나도 하고 싶지 내 마음대로 되냐고…



수영(1.5km):
200명 단위로 4파트로 나뉘어 일분 간격으로 출발하게 되어 있다. 앞에서 출발하면 좀 나을 것 같은 생각은 그냥 바램이란 걸 아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출발하자 말자 무지막지하게 강한 힘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늪에 빠진 사람처럼 어떻게든 여기를 빠져 나가야 산다는 일념으로 팔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수영한다기 보다는 생존본능의 몸부림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수영장에서 좀더 고상하고 우아한 폼으로 수영하기 위해 노력한 지난 몇 달간의 수고는 완전히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바꿈터에 오니 벌써 여자 엘리트들이 슈트를 벗고 있다. 이건 아닌데… 좋은 징조는 아니다. (0:29:57)

사이클 (40km):
도로 일부를 통제하여 조금 무리하게 3바퀴 코스로 만들다 보니 코너가 엄청 많고 돌다 보면 내가 지금 몇 바퀴째를 돌고 있는지 헷갈리기 십상인 곳이다. 동호인엘리트는 드리프팅이 허용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논리적으로는 안 맞는 얘기 같기도 하고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뭐하고 해서 조금 애매하게 앞에 가는 잔차에 붙어 가는데 심판이 따라와 호각을 불면서 나한테 주위를 준다.

게시판에서 된다고 본 것도 같은데… 황급히 떨어질 수 밖에…
나중에 안일이지만 동호인엘리트는 엘리트와 준하기 때문에 드리프팅이 허용된단다. 심판도 엘리트번호인지 아닌지를 구별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사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상위급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조그만한 실수가 바로 순위와 직결된다. 2위한 조병직 선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되풀이 하며 사이클을 탔다. 그 속도로 계속 타고 런에서 그를 잡으면 이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30km 지나 잠깐 딴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를 놓치고 말았다. 아주 순식간에 50m 정도 차이가 낳는데 그는 여러 선수들과 드리프팅을 하고 있었고 난 바람 부는 도로를 혼자 달려가고 있었기에 아무리 악을 쓰고 페달을 밟아도 따라갈 수가 없다. 그와의 차이는 점점 멀어지고 급기야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뿔싸! (1:03:49)



런(10km):
그가 어디쯤 뛰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잡으려고 무리하게 사이클링해서 인지 다리가 너무 무겁다. 빨리 뛰어야겠다는 건 생각일 뿐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 7km 지점에서 뒤따라 오던 전태선이 날 추월한다. 그를 따라 갈 수가 없다.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정신력!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정신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육체가 뒷받침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만신창이가 된 육체에게 아무리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봐도 통할 리 없다.
효율적인 사이클링이 안된 상태에서 절대 좋은 런이 나올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회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0:42:44) (Total= 2:16:30)

피니쉬라인: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지만 동호인들의 기록향상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이다. 작년 50대에서의 우승자의 기록은 2:22:04 올해 2:11:02 무려 11분이나 단축되었다. 이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살아 남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난 관광모드, “난 완주만” 을 주장하는 선수들은 누구나 가게 되는 그 이상을 혜안의 눈으로 미리 내다 보는 선각자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나도 곧 그 경지에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귀가중 양평에 있는 털보 바베큐에서... 자리가 없어서 한번도 먹지 못했다는데 그날은 운좋게...)


(돼지 바베큐 2인분 20,000원, 닭다리 2인분 10,000원, 오리 2인분 10,000원... 너무싸다)

( 손수 꾸어야 하는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값싸게 푸짐하게 먹을 수있는 곳인것 같다.)


이병은
::: 수영 싸이클 하고 런 10Km 가 42분 대면...무지하게 잘한거라 여겨지는데...스틸 헝그리인가요..? 2시간 10분대..와우..

황희상
::: 자유인의 포스가 느껴지십니다.

서윤경
::: 우르르 몰려다니는 남정네 무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끝나고 따라주신 막걸리 다 못 마셔서 죄송합니다..^^

박인석
::: 2:16분대면 엘리트임에 손색이 없지. 살다보면 뭔가에 빠지는 것도 좋은 것아닐까요? 혹자는 '중독'이라고 하지만, '중독'되지 않고 맛보기만 하고 말면 남는게 썰렁하지 않겠소.

중독도 중독나름
::: 이런 중독은 필요한듯하외다. 하여튼 기록도, 글 솜씨도 엘리트반열에 올랐소. 앞으로도 주로에서 50대의 불꽃을 더 활활 피워봅시다.

박인석
::: 어! 오남리댁도 지금 컴앞에 있소? 오남리 참외밭 많지요?

서윤경
::: 아이구 참외밭이라뇨...ㅋㅋ 지금 여기 우후죽순 아파트먼트밭이랍니다..^^

박병식
::: 역쉬! 다이나믹!! 수고하셨습니다... 또 기회가 있으니까요..^^

진재형
::: 형님이 런 두바퀴할때 전 한바퀴...역시 대단하십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문철
::: 광원 형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당일 컨디션과 여러가지 여건들이 기록에 많은 영향이 있나 봅니다. 우덜 관광파들은 덜 영향을 받지만요.. 또 다음대회가 기다리고 있군요.^^

박용수
::: 넘치는 열정.정열..부럽습니다..저도 뜨겁게 달구고싶은데...아 먼나라 이야기로만~~~

선현수
::: '동호인엘리트'부분을 만든 후로 불꽃 튀던데요. ㅎㅎ 능력 향상도 그렇고 이번엔 싸이클 거리가 짧아서 기록들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더 멋진 도전 이어가시구요. 수고하셨습니다.

이광옥
::: 수고했습니다 춘천에서봐요 작년처럼 또 우중경기가될거같은데 갈까말까고민중이긴하지만...

유태웅
::: 후기도 주옥같습니다,..^^ 꾸준한 레이스,.보람이 늘~~함께 하시길 바래용,..

임송운
::: 광원형! 수고많으셨습니다. 속초대회 인연이 없는것같기도 하네요. 형님얼른 컨디션회복하시구요. 목요일 날뵈요.

이호정
::: 엘르트라고 너무 부담갖고 운동하지마시고 그냥 즐기세요^^

반세훈
::: 수고하셨어요... 후기가 생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