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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삼종경기 후기 70 (2016.9.11) 철인 이광원

 

은총이와 함께하는 철인삼종경기 후기 70 (2016.9.11) 철인 이광원

20만년 전 지구에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가 더 힘세고 빠른 동물들을 제압하고 이 지구상의 주인으로 군림하게 된 데는 뭐든지 잘하려는 강렬한 의지 때문인지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 세속적인 성공이란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한 결과의 소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어릴 때 오디오와 사진을 좋아했다. 70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젊은 제자들 거느리고 대가로써의 위엄을 뽐내는 사진작가도 많고, 훨씬 더 많은 나이에도 새 오디오에 대한 정보나 기기에 대한 Know how를 전파하는 Messenger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경우도 많은데…

철인삼종같이 기술보다 체력이 요구되는 운동은 그 능력이 축적되지 않고 나이가 들면 기록저하라는 필연적인 슬픈 현실을 받아드려야 할 뿐 아니라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뭔가 세상에 남기고 가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철인삼종은 좌절만 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초인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려 하는 철인은 어리석어 보이기 조차하다.

훈련:


5월 대구대회 이 후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발가락 부상으로 2달 가량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 오랜 세월 극한의 고통도 참고 노력한 대가 치고는 너무 서글펐다. 존경 받는 대가는 못되더라도 강철같은 건강은 얻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었는데… 그 마지막 자부심마저 잃어 버렸다는 자괴감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은퇴도 고려해 봤지만 15년 동안 열정을 바친 세월이 너무 무상해서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청했던 설악, 이천 두 대회를 불참했고 대회 전날 수영대회에서 한 선수가 폭염으로 사망한 사고로 세종대회까지 무산되는 바람에 3 대회나 연속해서 참가하지 못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주기적인 대회참가가 운동의 리듬감을 유지해 주고 나태하고 게으른 본능에서 머물지 않게 도와주는데… 4개월 만에 나가는 대회라서 인지 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2016,9,11


현대인의 삶은 시계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 가듯이 복잡하고 정밀해 졌다. 촌각의 시간도 세분해서 다방면에 내 존재를 나타내야만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상암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서울에 사는 철인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대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온은 조금 높았으나 청명한 하늘과 지역난방공사에서 지원했다는 2억 원의 풍족한 자금을 바탕으로 어떤 대회보다 풍요로운 대회를 만들어 냈다. 더욱이 철인들이 낸 참가비 전액(7500만원)은 모두 장애우 병원 건립을 위해 사용되어진다니 마음 뿌듯하다.

유일한 경쟁자로 생각했던 유재형 선수가 발가락 뼈에 금 이가 대회에 참가 못하게 되었다는 낭보를 전해 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경쟁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경쟁이 없는 세상, 유토피아에서 살고 싶어 했지만 그런 세상은 인간에게 주어진 적이 한번도 없다.

개그우먼 이성미의 사회로 30분 가량 개회 행사가 있었고 8시, 엘리트부터 나이별로 2분 간격을 두고 흙빛 한강물 속으로 뛰어 들며 대회가 시작되었다.

수영(1.5km):

 

 


마지막 group에서 출발했다. 1000여명의 선수들이 얽혀 끝날 때까지 치열한 몸싸움은 계속되었다. 이번에 연습한 새로운 비밀 병기를 가지고 나와 은근 수영기록이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비디오에서 본 물고기 같이 매끄럽고 우아한 폼을 꿈꾸고 있었건만 온통 적들에 둘러싸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피 빛 물속을 가득 채웠다.

내가 다니는 올림픽 수영장은 6개월에 한번씩 코치가 바뀐다. 근대5종 국가 대표를 지냈던 이동환코치가 오면서 내 수영도 많이 달라졌다. 수영고수로 가는 마지막 단계인 팔꺽기는 오래 수영한 사람들 중에서도 잘 되지 않는 고난도 기술중의 하나이다. 팔꺽기가 되지 않는다면 우린 물을 완전히 잡을 수 없다. 코치가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팔꺽기만 연습하라고 숙제를 내어 주었다. 도무지 안될 것 같던 게 어느 안개 자욱한 날 아침,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팔이 정확히 꺽여지고 당겨지고 밀어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폼이 바뀌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수영하는 게 너무 힘들고 팔도 많이 아팠다. 너무 힘든다고 코치에게 투덜거렸더니 예전에 1KG 덤벨을 들다 이제 5KG 덤벨을 드는데 당연히 힘들지 않느냐고 아직 적응이 안되어서 그러니 계속 연습하라고 했다. 그 계속이 언제까지인지 몰라도 두 달로는 아직 많이 부족한 모양이다

헐떡이며 바꿈터로 들어 와서 같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고수 홍기철을 만났다. 보통 3분 정도 차이 나는데 내가 정말 빨리 나온 모양이라고 내심 좋아했는데 너무 여유롭게 수영을 마친 홍 선수의 실책으로 드러났다.( 0:30:07 t1: 0:3:33 )

사이클(40KM):

 

 


아무리 고요한 일요일 아침이라 해도 교통혼잡으로 악명 높은 서울의 도로를 막아, 시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철인삼종경기로 교통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민원을 감수하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겨우 3KM 정도의 도로를 할당 받아 6바퀴 도는 코스(37KM)로 설계한 담당자의 고뇌가 눈에 선하다. 갈 때는 약간 내리막이라 40KM 이상의 속도가 나오고 올 때는 맞바람에다 약간 오르막이라 33-34KM 속도로 떨어 졌다.

 


인간의 근력은 나이에 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에 더 많은 운동으로도 보충이 안 된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거부하면 가혹한 신의 형벌이 주어진다. 사이클은 근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운동이라 나이가 들면 가장 기록저하가 급격히 나타나는 종목이다.( 1:06:06 t2: 0:1:22 )

런(10KM):

 

하늘 중앙에 걸린 태양이 우릴 비웃고 있다. 누가 뒤에서 날 잡아 다니는 것 같다. 이렇게 힘 든 시합에 왜 또 참가했는지에 대한 후회뿐이다. 1KM를 뛰고 시계를 보니 5분30초나 걸렸다. 이건 아닌데… 두 달의 공백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시간이 가도 속도는 나지 않고 힘 든다는 생각뿐이다. 얕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5KM 반환점에서 나보다 5살이나 많은 박종섭 선배가 날 추월해 갔다. 따라가야겠다는 건 마음뿐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시야를 가로 막던 선배님의 날렵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대로 뛴다면 50분도 넘을 것 같다. 후배가 시합에서 49분에 뛰었다길레 비웃었는데 그 후배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50분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이 선만은 넘겨서는 안되겠다. 2KM를 남기고 질주를 시작했다. 인간에겐 누구나 심장 속에 초인이 살고 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것도 할 수 있다는 의지 하나로 극복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 0:49:37 Total: 2:30:43 )

FINISH LINE:

 


 

잘 자란 녹색 초원 위를 10여M 달려 아름답게 치장된 개선문을 통과했다. 여기는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을 씻겨주는 실로암 같은 곳이다. 행복이란 우리 마음속 작용에 불과하다. 뭔가 이루어, 뭔가 가져서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탈하지 못한 인간의 행복이란 항상 누구와 비교하고 평가되는 불안정한 순간적인 것이다. 이순의 나이에도 자유롭지 못하고 여전히 순위에 연연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일까 시상대 위에서 우승트로피를 받는 것도 조심스럽다.

 

 

 



 

 제4회_은총이_트라이_전체_결과_Results.xlsx

강승규 16-09-20 08:42
답변  
형이상학적인 후기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몸관리 잘하셔서 80세 이후까지 하셔야 합니다.
     
이광원 16-09-20 12:44
답변 수정 삭제  
항상 감사합니다.
몸상태가 안좋거나 기록이 조금만 나빠져도 나이탓으로 돌리는 나쁜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80까지는 지나친 욕심이겠지요.
홍기철 16-09-20 11:55
답변  
형님 우선 age 우승 축하드립니다
형님의 후기에 제이름이 나오다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나름 열심히 수영한다고 했는데
 형님이
더 열심히 한 덕분이지요
다음대회에서 저의 목표는
수영에서 age 1등입니다
     
이광원 16-09-20 12:48
답변 수정 삭제  
수영 폼교정에 많은 도움주어 항상 고맙습니다.
수영장에서 언제 기철씨 따라 다닐 수 있을지... 그날만을 꿈꾸며...
다음 대회에서는 분명 수영에서는 age부 1위 할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배미경 16-09-20 12:26
답변  
같이 운동한지도 10여년이 넘었는데 한결같이 꾸준하게 운동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순의 나이에  수영자세를 고치려는 열정과 
항상 도전의식을 가지고 생활하시는 모습 부럽기만 하네요.
선배님!  70회 에이지 1위 축하드립니다.
적은 훈련량에도 항상 좋은성적 비결좀 알려주세요.ㅎ
     
이광원 16-09-20 13:00
답변 수정 삭제  
헉... 미경씨가 리플을 다 달았네요.
전 국문도 제대로 못쓰는 분인줄 알았었는데... 아무튼 축하해 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뭐든 배우는 건 즐겁고 재미있는 일 같습니다.

운동을 많이 못하는 이유는 철인삼종운동 보다 더 재미있고 하고 싶은게 더 많아서 입니다.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김우중) ㅋ

미경씨도 철인삼종에서 우리나라 사람으로 유일하게 유럽챔피언십까지 획득했으니 너무 욕심내지 마시고 건강하고 즐겁게 운동하시기를 바랍니다.

 

 

이홍락 16-09-21 16:19
답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기량이 쇠퇴하고
젊은날의 호기록도 그냥 술자리에서나 가끔 회자될뿐인...
그래서 나이들수록 완숙해 질 수 있는 그림이나 음악같은
창조적인 취미를 배워야할텐데 라고...늘 고민하면서도
아직도 더 최고기량은 멀었다는 욕심을 놓지못해
운동을 하고있는 1ㅅ으로써
너무나 공감가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선배님은 운동뿐만 아니고 이렇게 멋드러진 글을 쓰시는
문학적인 기량이 초고수 이시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항상 건강히 운동하시고 언젠가 주로에서 뵈면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광원 16-09-21 17:41
답변 수정 삭제  
졸필에 공감하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제는 이미자선생님 콘서트에 다녀 왓습니다. 74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럽더군요.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생각이 많아집니다.
내가 15년동안 무얼했는지... 상처뿐인 영광인지... 무슨 보물인양 모아두었던 메달, 트로피 (청소하다 와이프가 깨뜨린 적이 있는데 얼마나 싸웠던지 ㅠㅠ) 지금 생각하면 아무 쓸모도 없는 걸...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운동한다고 다른 걸 너무 희생하지 말라는 걸 얘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