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pan Tagaman 철인삼종대회 후기 72 (2017.6.22-26) 철인 이광원
대부분의 경우 인간이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친 욕심 때문이다. 더 많이 가지고, 원하는 모든 걸 성취한다고 해도 욕심의 바다는 채울 수 없다. 끝없는 욕심의 굴레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한국은 짧은 기간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 냈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우린 초조해진다. 상대적으로 열등해지고 박탈감을 느낀다. 그래서 취미로 시작한 여가활동에서 조차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가 많다.
실타래 풀 듯 복잡한 골치 아픈 일에서 안식을 찾기 위한 돌파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 취미 – 어떤 이는 철인삼종을 종교라고 하는 극단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 사이판대회에 참가해 보면 우리의 철인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호모사피엔스는 원래 놀기 좋아하는 종족이다. 끼니만 해결되면 풍류와 낭만을 즐겼던 선조를 둔 후예들이 너무나 변해 버렸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전쟁 같은 게임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주는 여가활동으로써의 원래 목표로 돌아가야겠다.
사이판 타가맨대회
고대 차모르의 전설적인 왕 TAGAMAN 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일본 트라이애슬런 협회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28회를 맞는 장수대회로 1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맑고 얕은 바다와 한적하고 넓은 도로, 즐비한 야자나무와 해변 사이를 달릴 수 있는… 조금의 더위만 감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더욱이 시합 전후 두 차례 만찬은 철인들간의 만남의 장을 제공하며 최고의 기쁨을 선사한다.
2017.6. 23
사이판에 20번 이상 왔다는 조가온 프로의 주선으로 선수와 가족 21명의 대식구가 사이판 가는 진에어 비행기에 올랐다. 특히 이번에 3개의 협찬사 [엑스테라 코리아/온 러닝화/타누스타이어]에서 엑스트라 참가권(12만원), 온 런닝화(15만원), 타누스타이어(13만원)를 무료로 제공하는 행운을 선사했다. 대회 참가비 15만원을 포함한 모든 경비는 599,000원, 나같이 헝거리한 철인에겐 절대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이다.
숙소 ISLA BONITA
22일 22:00 출발 진에어 저가항공이 제공하는 빵 한 조각 먹고 4시간 35분 정도 날아 6월 23일 3시 30분경 Saipan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픽업 나온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ISLA BONITA 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있었다. 스페인 말로 아름답고 아름답다는 뜻이라는 데 이름처럼 숙소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3층의 조금 오래된 건물이고 1층에 부엌이 있어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Roommate 가 정해지고 방 배정을 3층으로 받았다. 주위를 둘러 보니 안면 있는 사람이 50대, 전설적인 달리기 기록 보유자 김진섭씨 정도여서 내심 그와 같은 방을 배정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어부인과 같이 온지라, 생판 모르는 임탁규씨와 roommate 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선지 모르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는 게 썩 내키지 않는데 다행스럽게도 나이도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지 않고 조그만한 일에도 항상 배려를 잊지 않는 서버3 주자 임탁규씨를 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히 자고 8시경 일어나 준비하여 9시 반경 차로 사이클 코스를 한 바퀴 돌고 아침 겸 점심식사 하러 갔다. 남대문이라는 한국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고 돌아와 사이클 조립에 들어갔다.
사이클 포장 조립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 제일의 난제는 사이클 포장이었다. 해외 대회에 매번 나가는 것도 아닌데 일년 내내 보관해야 하는 것이 부담되어 있던 하드케이스도 처분해 버려 주위 가게에서 빈 박스를 하나 얻어 사이클을 분해 포장하는데 생각처럼 잘 안되었다. 처음 박스는 너무 작아 다시 큰 것으로 바꾸어야 했고 가게 주인의 조언과 인터넷까지 뒤져서 겨우 포장에 성공했다. 뒷바퀴를 빼면 두 바퀴가 들어 가지 않는다는 간단한 진리를 터득하는데 며칠이 걸린 것 같다. 아무리 간단한 일에도 Know-how는 존재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합동 라이딩 및 수영
2시경 이번 대회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라이딩을 나갔다. 전문 촬영기사, 김태경씨의 대동으로 우리가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착각을 가지게 된다. 가지고 온 드론이 하늘 높이 올라 우리 머리 위를 오르락 거리고 오픈카를 개조한 촬영차량이 사이클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기분을 한껏 띄워 주웠다.
대회 본부가 있는 Kanos Hotel 로 이동하여 간단하게 등록하고 해변가로 가 수영을 했다. 바다는 맑고 잔잔하고 그렇게 깊지 않았다. 바닥은 풀과 모래로 이루어 졌고 작은 고기들도 간간히 보였다. 해변 근처 바닷물 온도가 상당히 높은 걸 제외하면 수영하기는 아주 편안할 것 같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잠깐 쉬었다 20분 정도 걸어서 다시 Hotel로 갔다. 부페 식당에서 만찬이 있었다. 선수 소개 따위의 지루한 행사는 없었다.
2017.6. 24 (토)
대회가 6시 부터라 4시에 알람을 맞추고 잤는데 더위에 잠을 깨고 보니 에어컨이 꺼져 있고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지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전기는 공기처럼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기다가 전기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되고 물도 나오지 않아 샤워도 할 수 없고, 적응되지 않는 어둠… 대회가 연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여기 사람들은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원숭이 바나나 몇 개 먹고 탁규씨가 주는 빵을 한 조각 먹었다. 사이클을 타고 5시경 대회 바꿈터가 있는 호텔로 출발했다. 바꿈터에 사이클과 운동화를 거치시키고 1km 정도 떨어진 수영출발지로 이동했다. Chip은 없었고 수기로 기록을 대신할 모양이다.
수영(1.5km):
바다 한가운데 낡은 탱크가 한대 서있고 그걸 돌아서 해변 위쪽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바꿈터가 나타난단다.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잔뜩 찌푸린 바다는 목표물 확인하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라인은 없었고 인원도 적어 몸싸움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슈트도 없고 더욱이 내 age 에서는 혼자 출전이라 편안하게 출발했다. 대회하며 혼자 출전하여 출발 전부터 우승을 예약하는 호사를 언제 누려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선천적으로 경쟁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공평한 낙원을 꿈꾸는지 모른다. 그러나 능력에 맞게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지는 사회는 허구로 판명되었다. 인간은 경쟁을 통해 강해지고 발전한다.
탱크를 돌 때까지는 크게 코스를 벗어 나지 않은 것 같다. 그 후 목표를 향해 한참을 수영하고 있는데 작은 카누가 옆으로 와 옆구리를 쳤다. 근처를 바라보니 주위에 선수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가이드가 가르치는 방향 한참 먼 거리에 어둠 속에서 첨벙거리는 돌고래 떼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목표물은 내가 추측한 위치보다 훨씬 먼 거리에 존재했다. 1.5km 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혼자 나왔으니 천천히 즐기자고 마음먹어도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나 보다. (33분 정도)
사이클(40km):
숨을 헐떡이며 바꿈터로 나왔다. 다행히 사이클이 많이 보였다. 사이클이 마치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허벅지가 꽉 뭉쳐 페달링이 되지 않는다. 많은 선수들이 날 추월했다. 최근 일주일 이상 훈련을 하지 않은 게 원인인 것 같다. 15km 후반부터는 조금씩 속도가 낳다. 비가 내렸다 햇빛이 낳다 를 되풀이 했다. 언덕도 거의 없고 바람도 크게 불지 않았다. 35km 지점에서 오른쪽 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앞사람을 따라 가다 코스를 잠깐 이탈했다. (1시간17분)
런(10km):
출발할 때 비가 와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두고 뛰었는데 뛰는 내내 후회했다. 강한 햇빛과 무더위을 막아 줄 유일한 도구를 두고 왔다는 자괴심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2km 정도 뛰었을 때 사이클에서 날 추월했던, 오랜 나의 훈련파트너 독종 배미경씨가 보였다. 아주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추월하고 조금 속도를 높였다. 따라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추월했는데 재 추월 당하면 정말 난처해 진다. 원하지 않는 피 말리는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아직도 초반인데…
반환점에 가까이 오자 두 명의 한국선수(임진영, 박도은)들이 보였다. 초연해 지고 싶었으나 DNA 속에 자리 잡은 오 천년 한민족의 억눌린 한이 되살아 났다. 살아남기 위해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왔던 선조들의 피가 용솟음쳤다. 잡아야 한다. 1km 남았을 때 스퍼트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결승점에 가까이 오자 그들이 점점 빨라졌다. 따라 가기도 힘 든다. 인간은 영악한 동물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결코 고통을 감내하지 못한다. 우리 age도 아니고 젊은 사람들한테 이겼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고... (52분)(Total= 2:46:02)
Finish Line:
우린 항상 현재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오늘의 고통은 언젠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뛰는 내내 다음 주 있을 속초대회를 걱정했었는데… 여기를 통과하는 순간 우주를 유영하는듯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불안전한 인간에게 절대적인 척도는 없다. 그냥 상대적으로 비교하고 느낄 뿐이다. 고통이 클수록 성취의 기쁨도 크다. 한국원정대원들이 하나하나 결승점을 통과했고 피 빛 자욱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전우애, 희열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얼굴에 가득하다.
폐회식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오렌지와 바나나를 먹고 단체사진 몇 장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샤워도 할 수 없다. 1시 폐회식 참가를 위해 차를 타고 Kanos Hotel 로 갔다. 해변가에 시상대를 만들어 두었고 그 앞에 야외 부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과 각가지 맥주를 무제한 제공했다. 난 가지고 간 56도 고량주를 한잔했다. 일생 최고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족히 1/10 톤은 이상 될 것 같은 사회자의 유모스런 제스처와 스피치가 알코올에 적당히 취한 선수들을 흥분시켰다. 사회자와 배치기하거나 씨름하는 듯한 선수를 보며 모두들 웃고 즐기는 모습이 너무 정겹다.
전쟁터에서 막 돌아 온 듯 잔뜩 긴장되고 근엄하기 조차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오르는 우리들 모습과는 너무 대조되었다. 완주의 기쁨을 즐길 여유도 없이 식어버린 5,000원 짜리 도시락 하나 길바닥에서 순식간에 해치워 버리고 차 막힌다고 시합 끝나자마자 바로 사라져 버리는 걸 당연히 여겼던 우리가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린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투쟁했던가?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간직했던 성공이라는 가치가 행복을 주었던가? 부상을 달고 살며 조금이라도 기록 단축해 보겠다고 모든 열정을 바쳐 얻은 게 무엇인가? 많은 걸 느끼게 한 폐회식이었다.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이 입상의 기쁨을 맛보았고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시내관광
사이판에서 제일 번화한 곳에 자리 잡은 갤러리아 백화점 면세점으로 갔다. 근처에서 2시간 가량을 배회했다. 딸아이에게 줄 초크렛을 몇 박스 샀다. 저녁식사 하러 야외에 마련된 큰 식당으로 갔다. 군인들과 미녀들이 열을 지어 있고 미국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 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갑자기 일진 광풍이 몰아 처 텐트가 일부 날라가고 장대비가 쏟아 졌다. 여기서 식사하기는 틀렸다. 행사도 취소되었고 우리는 근처 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하는 수없이 수퍼마켓에서 맥주 등을 구입한 뒤 숙소로 돌아와 닭도리탕, 부대찌개, 오징어 뽁음 등을 시켜 시합 뒤풀이를 하며 자기소개시간을 가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소망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투자를 하지 않고 보상을 기대한다는 건 어리석은 행위이다. 인정하고 칭찬하는 만큼 내게도 그런 보상이 주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2017.6.25(일)
트레일런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아마 트레일런일 것이다. 8시경 근처 밀림지대로 이동하여 간간히 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산속으로 들어 갔다. 바닥이 미끄럽고 길이 아주 험했다. 몸이 불편한 가족 분들도 따라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사이판은 이차대전 때 전투로 치열했던 곳이다. 일본이 만든 동굴의 잔재가 산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포탄 껍데기로 보이는 고철덩이가 눈에 띠였다. 차로 해변가 바베큐장으로 이동했다.
바베큐파티
사실 그 동안 다른 문제는 모두 만족했지만 어제 폐회식 식사를 제외하고는 먹는 문제는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그 한을 오늘 바베큐장에서 해결할 모양이다. 소갈비, 돼지고기 삼겹살, 닭 튀김, 닭도리탕, 수박, 맥주등 남을 정도의 엄청난 산해진미들이 우리의 식욕을 자극했다. 인생의 즐거움의 반 이상은 먹는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맛있는 음식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을 준다.
구로토 스노클링
구로토 동굴로 스노클링을 갔다. 20kg 이상의 장비를 지고 1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 다이버들에겐 무척 고통스런 기억을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구로토, 거대한 동굴 뒤쪽에서 햇빛이 비치면 푸른 에머랄드 물빛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가 나지 않아 어두워 물속은 잘 안보였다. 숙소로 돌아오며 Bird Island 와 만세절벽(Banzai Cliff) 를 잠깐 들렸다. 비가 내려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복귀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 하며 이별을 못내 아쉬워했다.
한국으로
부산 팀은 1시경에 출발했고 서울 팀은 2시30분에 숙소를 출발하여 4시30분 인천행 진에어를 탔다. 인간이란 과거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 진다. 오늘의 나는 과거란 시간의 소산물이다. 그 기억의 파편 속에 영원히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우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메모리 속에 차곡차곡 쌓아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이판 여행은 가장 위대한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여행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조가온 프로에게 감사를 전하고 같이 한 모든 선수,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 Seemit Blog 에서 더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steemit.com/triathlon/@syskwl/28th-saipan-tagaman-triathlon-game-2017-6-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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