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섯 번째, 내 생애 50번째 트라이애슬런 경기가 있었던 2011년 7월 11일 아산은 내 눈물인양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왜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문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뛰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중도에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끝도 없이 일어났다. 그래 마지막이니까? 이제 다시는 안 나올꺼니까....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곳곳에 배여 있고 시골 다방에서 광고용으로 제공된듯한 원색 휴지통들이 작은 탁자 위에 겹겹이 쌓여있었다. 1인용 전기 밥솥을 꺼내 밥을 안치고 밖으로 나왔다. 최근 매일 계속되는 장마로 너무 운동을 못해 몸이 너무 무겁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신정호 주변을 한 바퀴 뛰었다.
민소매 슈트를 입었다. 팔 놀림이 아무래도 좀 편할 것 같은 느낌, 최근에 연습한 2 beat kick 수영에선 팔을 굽히고 미는 동작이 중요한데 풀슈트는 아무래도 팔의 움직임을 저해하는 느낌을 받는다. 100명 가량은 물속에 미리 들어가고 나머지는 물 밖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 출발 총성이 들렸다. 1.9km 라인을 수초 및 호수모양에 맞게 이리저리 배치해서인지 거리가 아주 길게 느껴졌다. 출발 때 조금 몸싸움이 있었지만 인원(200여명)이 적어서인지 곧 잠잠해 졌다. 짙은 흙탕물은 눈앞에 놓인 내 손도 보이지 않게 한다. 수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팔의 회전 수를 줄여야 한다. 최대한 천천히 스트로크를 하며 팔과 다리의 박자를 맞추어 나갔다. 큰 어려움 없이 수영을 마쳤다. (1:18:21 T1: 0:04:12))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언덕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가파른 언덕이 나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그게 대회를 망칠 이유는 되지 못했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번째 첫 반환점을 지나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불운을 알리는 신호라는 걸 아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장 밑에 넣어둔 타이어와 펑크패치가 떨어져 나갔다.
첫번째 펑크 - 간혹 이게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은 아닌 것 같다. 50km 지점에서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타이어도 없고 2년전 태안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오토바이타고 드래프팅 감시하던 박병훈심판에게 메카닉을 불러달라고 했다. 지나갔다. 15분 정도 시간을 지체했지만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그를 따라 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44km/h의 속도로 달렸지만 별로 힘 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와의 거리는 이제 1,5km 곧 추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3반환점100m 지점에서 두 번째 펑크가 발생했다.
두번째 펑크 튜브가 닳아 구멍이 몇 군데 나있었다. 아직 100km 나 더 타야 하는데…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메카닉을 불렀다. 튜브는 당장 없고 shop에 가서 가져와야 한단다. 50분을 기다려 튜브와 타이어를 갈 수 있었다. 응원 나와있던 이광옥선배가 나보다 더 안타까와했다. 작은 펌프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공기를 넣어 주었다. 지켜보던 어떤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펑크 때우는 시간 빼줘요.” 목표을 잃어버린 사람은 방황하고 무기력해 진다. 포기도 생각해 봤지만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라도 하는 게 가슴에 훈장처럼 붙이고 있는 철인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행동처럼 여겨졌다. 절벽처럼 느껴졌다. 주위에 선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다쳤던 왼쪽 장경인대가 아파왔다. 그러나 그 육체적 고통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빵구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이클 끝나고 뛰고 있을꺼라는 막연한 안타까움이었다. 전쟁터에서 쫒긴 패잔병처럼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바꿈터로 돌아왔다. (7:50:42T2: 0:03:39)) 원하는 메조히스트들 에겐 못마땅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이미 지쳐 버린 내겐 이 평탄한 길마저도 고난의 길이었다. 왼쪽 장경인대가 계속 아팠지만 보폭을 짧게 하며 계속 뛰었다. 회수가 반복될수록 고통은 심해지고 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누가 대통령과 한 바퀴 남은 상황을 선택하라면 1초의 생각 없이 바로 한 바퀴 남은 상황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그 선수가 너무 부러웠다. 상황이 발생했다. 아무 신호도 없이 발생하는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뛰다가는 어두운 비오는 거리에 내동댕이 쳐질 것 같다. 뛸 수 없다. 중도포기를 생각했지만 아직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6키로 빨리 걸으면 1시간, 두 바퀴 걸어도 2시간, 시간적으는 충분하다. 이미 기록은 포기한지 오래 되었고... 그래 완주라도 하자. 뛰지 않으면 안될 온갖 당위성을 찾아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것으로... 나는 로보트다. 나는 뛰는 기계다. 고통도 못 느끼고 그냥 뛰기만 하는 기계라고 주입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고통에서 해방 받고 싶다. 결승점 근처에서 비 맞아가며 계속 이름 부르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유희란철녀
내 두 다리에 의지해 목적지 까지 가야 하는 정직하고 잔인한, 그리고 융통성없는… 시계를 보니 좀 더 힘을 낸다면 14시간 안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련하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지 어차피 의미 없는 것에 미치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미치도록 신봉하고 있는 존재들이 triathlete이 아니었던가? 발악이었다. 섞어 없어질 육체보다는 영원무궁 존재할 정신이 더 위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명, 두 명 추월해 가며... 시간은 흘러가고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런 일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진실만이 진실이다. (4:41:53 total: 13:58:47)
잘하고 싶었는데…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우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완주접시 하나, 죽 한 그릇 먹고 다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곰팡이 냄새 풍기는 모텔로 돌아 가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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