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빗속의 질주(아산 트라이애슬런 대회 후기 2011.7.11) 50


올해 다섯 번째, 내 생애 50번째 트라이애슬런 경기가 있었던 2011년 7월 11일 아산은 내 눈물인양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왜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문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이 고통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어두운 거리를 나 홀로 뛰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중도에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끝도 없이 일어났다.

그래 마지막이니까? 이제 다시는 안 나올꺼니까.... 그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7/10
혼자 차를 몰고 아산으로 갔다. 아산 신정호관광단지 주차장에 설치된 본부에 등록하고 전화로 예약한 모텔로 갔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곳곳에 배여 있고 시골 다방에서 광고용으로 제공된듯한 원색 휴지통들이 작은 탁자 위에

겹겹이 쌓여있었다. 1인용 전기 밥솥을 꺼내 밥을 안치고 밖으로 나왔다. 최근 매일 계속되는 장마로 너무 운동을

못해 몸이 너무 무겁고 컨디션이 좋지 않다. 신정호 주변을 한 바퀴 뛰었다.

7/11
5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대회장으로 갔다.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수영(3.8km)


민소매 슈트를 입었다. 팔 놀림이 아무래도 좀 편할 것 같은 느낌, 최근에 연습한 2 beat kick 수영에선 팔을

굽히고 미는 동작이 중요한데 풀슈트는 아무래도 팔의 움직임을 저해하는 느낌을 받는다.

100명 가량은 물속에 미리 들어가고 나머지는 물 밖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7시 출발 총성이 들렸다.

1.9km 라인을 수초 및 호수모양에 맞게 이리저리 배치해서인지 거리가 아주 길게 느껴졌다. 출발 때 조금

몸싸움이 있었지만 인원(200여명)이 적어서인지 곧 잠잠해 졌다. 짙은 흙탕물은 눈앞에 놓인 내 손도 보이지

않게 한다. 수영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팔의 회전 수를 줄여야 한다.

최대한 천천히 스트로크를 하며 팔과 다리의 박자를 맞추어 나갔다. 큰 어려움 없이 수영을 마쳤다.

(1:18:21 T1: 0:04:12))

사이클(180km)


300m 정도를 달려 바꿈터에서 사이클 백을 찾아 탈의실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사이클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모든 게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언덕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가파른 언덕이 나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그게 대회를 망칠 이유는 되지 못했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번째 첫 반환점을 지나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불운을 알리는 신호라는 걸 아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장 밑에 넣어둔 타이어와 펑크패치가 떨어져 나갔다.



첫번째 펑크
설마 펑크가 날까? 인간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적당히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좋은 말로 긍정적인 착각

- 간혹 이게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은 아닌 것 같다. 50km 지점에서 타이어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타이어도 없고 2년전 태안에서의 악몽이 떠올랐다.

오토바이타고 드래프팅 감시하던 박병훈심판에게 메카닉을 불러달라고 했다.

잠시 후에 헬로트라이 메카닉 트럭이 와 주었다. 타이어를 갈았다. 수영에서 10분 정도 늦게 나온 유재형이

지나갔다. 15분 정도 시간을 지체했지만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그를 따라 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44km/h의 속도로 달렸지만 별로 힘 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와의 거리는 이제 1,5km 곧 추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3반환점100m 지점에서 두 번째 펑크가 발생했다.


두번째 펑크
타이어를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작년 겨울에 롤라 훈련하고 뒷바퀴를 갈지 않고 계속 타서인지

튜브가 닳아 구멍이 몇 군데 나있었다. 아직 100km 나 더 타야 하는데…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메카닉을

불렀다. 튜브는 당장 없고 shop에 가서 가져와야 한단다. 50분을 기다려 튜브와 타이어를 갈 수 있었다.

응원 나와있던 이광옥선배가 나보다 더 안타까와했다. 작은 펌프로 땀을 뻘뻘 흘리며 공기를 넣어 주었다.

지켜보던 어떤 아저씨가 내게 묻는다.

 

“펑크 때우는 시간 빼줘요.”
“빼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병사의 수가 아니다. 전의를 상실한 군대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목표을 잃어버린 사람은 방황하고 무기력해 진다. 포기도 생각해 봤지만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라도 하는 게

가슴에 훈장처럼 붙이고 있는 철인이라는 이름에 걸 맞는 행동처럼 여겨졌다.

5바퀴째 거세진 빗방울, 태풍이라도 올라오는지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별로 가파르지 않게 보았던 언덕이

절벽처럼 느껴졌다. 주위에 선수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다쳤던 왼쪽 장경인대가 아파왔다.

그러나 그 육체적 고통보다 더 나를 괴롭힌 것은 빵구만 아니었으면 벌써 사이클 끝나고 뛰고 있을꺼라는

막연한 안타까움이었다. 전쟁터에서 쫒긴 패잔병처럼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바꿈터로 돌아왔다.

(7:50:42T2: 0:03:39))

런(42.195km)


신정호 주변 6km우레탄 포장도로를 7바퀴 뛰는 런 코스는 너무 환상적이라 좀더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걸

원하는 메조히스트들 에겐 못마땅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이미 지쳐 버린 내겐 이 평탄한

길마저도 고난의 길이었다. 왼쪽 장경인대가 계속 아팠지만 보폭을 짧게 하며 계속 뛰었다.

회수가 반복될수록 고통은 심해지고 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5바퀴가 남은 상황에서 옆에서 뛰는 선수 입에서 들어야 했던 충격적인 한마디 "이제 한 바퀴 남았어"

누가 대통령과 한 바퀴 남은 상황을 선택하라면 1초의 생각 없이 바로 한 바퀴 남은 상황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계없이 그 선수가 너무 부러웠다.

5바퀴째, 지나친 착취에 반항하는 다리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순간적인 다리 경련으로 넘어질 것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아무 신호도 없이 발생하는 주저앉아 버릴 것 같은 상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6바퀴째 대회에서는 절대 걷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이 무너졌다. 걷기 시작했다. 다리 경련으로 계속

뛰다가는 어두운 비오는 거리에 내동댕이 쳐질 것 같다. 뛸 수 없다. 중도포기를 생각했지만 아직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6키로 빨리 걸으면 1시간, 두 바퀴 걸어도 2시간, 시간적으는 충분하다.

이미 기록은 포기한지 오래 되었고... 그래 완주라도 하자.

날은 어두워지고 비가 거세졌다. 장거리를 뛰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그 긴 시간 동안 왜 뛰는지에 대한,

뛰지 않으면 안될 온갖 당위성을 찾아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완벽한 것으로... 나는 로보트다.

나는 뛰는 기계다. 고통도 못 느끼고 그냥 뛰기만 하는 기계라고 주입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고통에서 해방 받고 싶다. 결승점 근처에서 비 맞아가며 계속 이름 부르며

열광적으로 응원하던 유희란철녀


“이제 마지막이지”
“아니 한 바퀴 더 남았어”
“오늘 무지 고생하네”


이게 마지막 바퀴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차를 탈 수 도, 오로지

내 두 다리에 의지해 목적지 까지 가야 하는 정직하고 잔인한, 그리고 융통성없는…

7바퀴째,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마지막 바퀴째는 순간적으로 넘어질 것 같은 상태는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좀 더 힘을 낸다면 14시간 안에는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련하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렇지 어차피 의미 없는 것에 미치도록 의미를 부여하고 그걸 미치도록 신봉하고 있는 존재들이 triathlete이

아니었던가?

저 멀리 finish line이 놓인 아산신정호국민관광단지의 불빛을 그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나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섞어 없어질 육체보다는 영원무궁 존재할 정신이 더 위대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명,

두 명 추월해 가며... 시간은 흘러가고 아무리 슬프고 고통스런 일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진실만이 진실이다.

(4:41:53 total: 13:58:47)

Finish Line


긴 여정이 끝났다. 일년 동안 오늘을 준비하며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가 이거란 말인가? 조금 허무했다.

잘하고 싶었는데… 하늘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면 우린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완주접시 하나, 죽 한 그릇

먹고 다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곰팡이 냄새 풍기는 모텔로 돌아 가야 했다.

진재형 2011-07-13 18:15:15
그런일이..어쩐지 형님이 런에서 저하고 별로 차이가 안나서 의아했습니다.
고생 많으셨고 몸조리 잘 하세요.수고하셨습니다.
김승용 2011-07-13 20:56:08
이제 형님도 무심의 경지로 들어가신 듯 합니다.
형님을 통해 고통스런 육체의 몸부림 너머 맑은 정신의 허허로움을 보는듯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아무리 정신이 높이 고양되도 육체가 허락치 않으면 한발자욱도 옮길 수 없으니깐요...
그어리석은 넘을 밉다고 너무 고생시키지 마시구요...
살살 어르고 달래서 둘이는 한몸이되서 사이좋게 지내야합니다...ㅋㅋㅋ
저도 제주에서 아주 편하게 걷다뛰다 했습니다.
덕분에 런에서 그렇게 밝은 표정의 사진은 첨입니다....
유태웅 2011-07-14 08:30:32

대회 후 전체 기록을 보니, 선배님 바이크 기록이 같은 연령대 카테고리 경쟁 선수들

보다 1시간 넘게 차이가 나더군요,..
때문에 바이크에서 뭔가 '사단'이 났구나 생각했었습니다..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심적으로도 매우 힘들었을 대회라는 생각입니다....
고생하셨구요,.. 항상, 깔끔한 후기로 이렇게 대회를 복기하는 선배님의 평소 습관은

참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트라이애슬론 50 번째 대회 출전도 감축드리구요~~~,..

윤광종 2011-07-14 10:52:54
수고 많으셨습니다.
백승엽 2011-07-14 13:19:07
아이구...형님....이런 생고생을...제가 자봉이라도 해드렸어야 하는데....제 잘못도 큽니다....^^
다시...목포 가시면.....만사 제쳐두고 따라가겠습니다....
이승기 2011-07-14 15:24:34

형님의 후기는 항상 그렇듯.. 감동의 물결이 있읍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이야

말로.. 진짜 철인의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멋지시고, 수고하셨습니다.. 잘 회복하시길~

 

박일환 2011-07-30 11:24:38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채희영 11-07-14 10:13
답변
고생하셨네. 그레이트맨과 인연이 넘 깊어서그런게 아닐까? 08년 태안에서 안타까운모습을 올해 또 보다니... 

 

 이런 저런 모든일이 우리들 여정 아닐까^^ 회복 잘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