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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철원트라이애슬런 후기 37



어릴 때 냇가에서 고기잡고 호수에서 어름 지치던 정겨운 추억이 있던 고향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는 곳은 여기 철원밖에 없다. 반은 이북이라는 광대한 토고 저수지의 맑은 물, DMZ를 넘나들며 더없이 넓은 평야를 달릴 수 있고, 농수로로 만든 작은 개울의 졸졸 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달릴 수 있는 곳, 올해는 철원이 마지막 대회라서 인지 더욱 애착이 간다.

7/25

백승엽씨와 함께 철원으로 향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픈 존재가 인간이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등록하고 사이클거치하고 토고 저수지로가 수영 조금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7/26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은 강하다. 비 오거나 흐린 날씨를 기대했었는데 다행히 기온은 그렇게 높지 않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피부를 태운다는 게 너무 싫다. 피부암의 위험도 있지만 비쩍 마르고 새까맣게 타 공사판 노가다 같다는 구박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6시경 버스 타고 토고 저수지로 이동했다. 대회는 정각 7시 반에 시작되었다. 주변 경관이 뛰어 나고 물이 깨끗해 여기보다 더 좋은 코스는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느낌이 좋아 기록도 잘나올 것 같다.


수영(2km):

물위에서 대기하고 있다 출발신호에 맞추어 출발했다. 동시에 500여명의 선수가 동시에 출발했기 때문인지 최근에 어떤 시합보다 몸싸움이 심하다. 몸싸움에서 유리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줄을 잡고 줄은 몇 번 넘나 들면서 수영을 했다. 다른 나라에는 없다는 라인이 우리나라만 유난히 존재하여 말썽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수영시합처럼 반환점에 부표하나 띄워두고 돌아오게 하면 몸싸움도 별로 없을 것 같고 라인을 잡아 기록을 줄였다느니, 줄 안쪽으로 들어왔다느니 하는 비난도 없을 것이다. 수영을 잘하던 못하던 라인이 있음으로 라인에 의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루빨리 라인을 없앰으로써 시합 후 분란의 소지를 없애야겠다. 잡고 쉬는 건 괜찮고 잡고 앞으로 당기면 안 된다는 모호한 규정이 문제를 확대시킬 소지가 있다.

바다보다는 호수가 수영하기가 훨씬 쉽다. 파도나 조류가 없어 수영장과 비슷하기 때문인지 호수에서의 기록이 항상 더 좋게 나온다. (0:34:42)



사이클(90km):

바꿈터에서 다른 선수보다 좀더 빨리 나올 수 있는 건 아마 군대에서 훈련을 제대로 받아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경기기록을 줄인다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바꿈터에서 1-2분을 더 빠르게 나올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50km 쯤 갔을 때 올해 40대 엘리트에서 같은 에이지부로 올라와 각종대회에서 항상 일위를 놓치지 않던 임정수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사이클을 타고 있었다. 조금 의아해 하며 그를 추월했다. 잠시 후 물통게이지가 떨어져 나갔다. 앗~~ 카본으로 된 비싼건데 내려서 다시 주워 끼우는 사이 그가 다시 추월했다. 잠시 후 그를 다시 추월했다. 뭐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황준오가 날 아는 체 했다. 그는 날 추월하지 않고 계속 따라오더니 언덕이 나오자 날 추월해 갔다. 대략 20km 정도를 남겨 둔 시점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무척 힘들어 보였다. 그는 2주전 제주대회의 피로가 아직 덜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크게 무리하지 않고 사이클을 마쳤다. (2:49:53)



(21km):

삼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런은 경기의 승부처다. 7km 코스를 3바퀴 돌아야 한다. 사이클에서 기록을 많이 줄인 이재범과는 거리 차가 원낙 커서 그를 잡기는 불가능 한 것 처럼 느껴졌다. 얼마의 간격을 두고 황준오가 뒤에서 따라 온다. 반환점에서 계속 시간을 보며 그의 속도를 가늠해 보는데 그가 조금씩 더 처지는 것 같다. 그도 날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사이클을 힘들게 타지 않았기 때문에 런 때 힘이 있었다. 한 바퀴 기록을 보니 34분이다. 좀더 당기면 1시간 40분 안에 들어 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작열하는 태양, 거의 1.5km 간격마다 있는 보급소에서 콜라를 마시고 물을 뒤집어쓰며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를 쥐어짜고 있었다.

고질적인 오른쪽 발바닥 통증이 시작되었다. 타이레놀 한 알 까서 입에 쑤셔 넣고 아무 감정 없는 기계처럼 뛰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멀고 먼 21km, 시간이 가면 끝난다는 진실, 인간에겐 시간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 시간만이 모든 고통과 슬픔을 이기게 해준다. 오늘이 아무리 어렵고 힘 든다 해도 시간이 모든걸 해결해 줄 것이다. (1:41:12) (Total 5:10:18)



Finish Line:

사단에서 나온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장내 아나운서와 자봉 나온 여고생의 환호성을 뚫고 피시쉬라인을 통과 했다. 지옥에 있다 천국으로 온들 이보다 더 기뿔 수 있겠는가? 에이지부 이위를 차지했다. 올해 처음 입상이다. 올해 엘리트로 올라온 4명의 강자가 빠져서겠지만. 입상의 기쁨이 사라지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비난의 화살이 게시판을 빨갛게 물들여 갔다. 입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 마지막 한번의 입상이 나를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