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일자산은 달리기 훈련하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뛴다는 게 힘들어 쉬고 싶을 때면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덤들을 바라본다. 인간은 언젠가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신이 오늘부터 편안히 쉬세요 라고 할 때까지는 목숨 걸고 뛰는 게 이생에서의 업보가 아닐까? 편안한 자유란 죽음 같은 고통을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 짜릿한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난 오늘도 트라이애슬런 경기가 열리는 이천으로 간다.
훈련: 급변하는 스트레스 강국,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정을 책임지는 중년으로써 가정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 면서 원하는 만큼 훈련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제약 속에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친구와 술 먹는 걸 포기하면서 거의 수도승 같이 절제된 생활을 하지 않고 진정한 트라이애슬릿(Triathlete)이 되는 방법은 없을 것같다. 내 경우도 그렇다. 많은 걸 버렸지만 훈련은 항상 부족하다. 아무리 효울적으로 훈련한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투자 없이 기록향상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하루 2시간 정도가 목표인데 비가 온다거나 여러 사정 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7/25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내일 시합이 걱정된다. 예전에도 비로 수영이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등록하고 혹시나 하고 호수로 갔다. 흙탕물이 가득하고 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천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참가하는 데 마음의 부담이 크지 않다. 그냥 연습하는 기분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기록이 더 나빠졌나…
7/26 잔뜩 찌푸린 하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경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 처럼 느껴졌다. 찬차 거치하고 시합 전에 호수에 들어가 10분 정도 수영을 했다. 매일 하는 운동이지만 몸이 가볍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쩐지 몸이 무겁고 계속 힘 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인 것 같다. 수영 조금하는데도 몸이 너무 무겁고 숨이 튀지 않는다. 오늘 아주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영: 7:58에 엘리트 출발이 있었고 8시에 300여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진흙탕 좁은 호수로 밀려 들어 갔다. 출발공간이 너무 좁아 한꺼번에 밀려던 인원을 소화하지 못해 호수 안은 거의 유격훈련 때 받은 참호격투 수준이었다. 좁은 참호 안, 적으로 나누어진 동료를 진흙탕 속에 처박아 넣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울한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는 순간이다. 팔꿈치로 가격당해 수경이 벗겨지고, 발을 당기고 위로 올라 타 누르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격투가 한바탕 벌어졌다.
수영장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연습한 우아한 폼은 사라지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리며 필사적 으로 여길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일념만이…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 기록은 한낮 사치에 불과할 뿐~~ (0:30:06)
사이클: 장비를 사용하는 운동의 경우 장비가 기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싼 장비보다 자기한테 잘 맞는 장비를 고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잔차를 많이 타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이상하게 왼쪽무릎 옆 인대가 아팠다. 누구도 거기가 아프다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초보 때는 그냥 그런 모양이다 하고 넘어갔는데 7년이 지난 올 초부터 장비를의심하기 시작했다.
크랭크 암이 긴 게 있고 짧은 게 있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키에 따라 크랭크 암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안 것도 우연이고… 키 작은 내게 표준 타잎인 170mm 가 길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는데 7년이 걸렸다. 165mm 크랭크 암으로 교체했다. 별 차이 없을 것 같은 5mm 차이가 얼마나 내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혹은 다음날 경악으로 바뀌었다.
페달이 훨씬 쉬워졌고 공포의 언덕도 단숨에 올라갔다.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사이클은 힘으로 타는 게 아니라 페달링으로 타야 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치게 되었다.
크랭크 교체 후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사이클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초반부터 허벅지가 무겁다. 한 바퀴를 평속 35km로 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더 떨어진다. 지난주 크랭크암 갈고 테스트한다고 너무 무리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장비보다 더 중요한 건 잘 훈련된 육체다.(1:14:42)
런: 이천 대회 최대의 난코스는 설봉유원지 가파른 언덕을 4바퀴 도는 달리기이다. 사이클에서 받은 부담 때문 인지 달린다는 게 너무 힘 든다.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2바퀴째 까지 계속 추월 당했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어 오르막에서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해야 하는데 오른쪽 발가락 바로 밑 발바닥 부분이 찢어질 듯 아파 빨리 뛸 수가 없다.
인간에게 고통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통 없는 운동도 많은데 달리기는 왜 엄청난 고통을 요구할까? 속도와 고통은 왜 비례하는가? 10km 뛰는 50분은 논문 몇 편 쓰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제 작년 기록보다 6분 늦은 기록으로 골인했다.(0:50:29 Total= 2:34:46)
Finish Line: 내가 늦게 들어 왔다는 사실보다 같은 에지부의 다른 선수가 20분대 기록으로 우승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포기하고 받아드리기에는 14분의 차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왜 우리는 자신과 남을 항상 비교하면서 살아갈까?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면서 왜 타인의 기록에 연연하는 걸까? 좀더 높은 가치와 이상실현을 위해 선택한 철인삼종에서 조차 속세의 치졸한 경쟁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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