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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이천 트라이애슬런 대회 후기 36



우리 집 바로 뒤에 있는 일자산은 달리기 훈련하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뛴다는 게 힘들어 쉬고 싶을
때면 언덕배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무덤들을 바라본다. 인간은 언젠가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신이 오늘부터 편안히 쉬세요 라고 할 때까지는 목숨 걸고 뛰는 게 이생에서의 업보가 아닐까?
편안한 자유란 죽음 같은 고통을 겪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그 짜릿한 자유를 갈구하기
위해 난 오늘도 트라이애슬런 경기가 열리는 이천으로 간다.

훈련:
급변하는 스트레스 강국, 한국이란 나라에서 가정을 책임지는 중년으로써 가정과 사회적 책무를 다하
면서 원하는 만큼 훈련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제약 속에서 자는
시간을 줄이고, 친구와 술 먹는 걸 포기하면서 거의 수도승 같이 절제된 생활을 하지 않고 진정한
트라이애슬릿(Triathlete)이 되는 방법은 없을 것같다.
내 경우도 그렇다. 많은 걸 버렸지만 훈련은 항상 부족하다. 아무리 효울적으로 훈련한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투자 없이 기록향상을 바라는 건 불가능하다. 하루 2시간 정도가 목표인데 비가 온다거나 여러 사정
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

7/25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내일 시합이 걱정된다. 예전에도 비로 수영이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등록하고
혹시나 하고 호수로 갔다. 흙탕물이 가득하고 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천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참가하는 데 마음의 부담이 크지 않다. 그냥 연습하는 기분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기록이 더 나빠졌나…

7/26
잔뜩 찌푸린 하늘, 비는 내리지 않았다. 경기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 처럼 느껴졌다. 찬차 거치하고 시합
전에 호수에 들어가 10분 정도 수영을 했다. 매일 하는 운동이지만 몸이 가볍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쩐지 몸이 무겁고 계속 힘 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는데 오늘은 후자인 것 같다.
수영 조금하는데도 몸이 너무 무겁고 숨이 튀지 않는다. 오늘 아주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영:
7:58에 엘리트 출발이 있었고 8시에 300여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진흙탕 좁은 호수로 밀려 들어 갔다.
출발공간이 너무 좁아 한꺼번에 밀려던 인원을 소화하지 못해 호수 안은 거의 유격훈련 때 받은 참호격투
수준이었다. 좁은 참호 안, 적으로 나누어진 동료를 진흙탕 속에 처박아 넣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울한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는 순간이다. 팔꿈치로 가격당해 수경이 벗겨지고, 발을 당기고 위로 올라 타
누르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격투가 한바탕 벌어졌다.

수영장에서 오랜 시간 공들여 연습한 우아한 폼은 사라지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리며 필사적
으로 여길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일념만이…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에게 기록은 한낮 사치에 불과할 뿐~~
(0:30:06)



사이클:
장비를 사용하는 운동의 경우 장비가 기록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싼 장비보다
자기한테 잘 맞는 장비를 고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잔차를 많이 타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이상하게
왼쪽무릎 옆 인대가 아팠다. 누구도 거기가 아프다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초보 때는 그냥
그런 모양이다 하고 넘어갔는데 7년이 지난 올 초부터 장비를의심하기 시작했다.

크랭크 암이 긴 게 있고 짧은 게 있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키에 따라 크랭크 암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안
것도 우연이고… 키 작은 내게 표준 타잎인 170mm 가 길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닫는데 7년이 걸렸다.
165mm 크랭크 암으로 교체했다. 별 차이 없을 것 같은 5mm 차이가 얼마나 내게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혹은 다음날 경악으로 바뀌었다.

페달이 훨씬 쉬워졌고 공포의 언덕도 단숨에 올라갔다. 속도도 많이 빨라졌다. 사이클은 힘으로 타는 게
아니라 페달링으로 타야 한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치게 되었다.

크랭크 교체 후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사이클 경기에 임했다. 그런데 초반부터 허벅지가 무겁다. 한 바퀴를
평속 35km로 돌았다. 시간이 갈수록 속도가 더 떨어진다. 지난주 크랭크암 갈고 테스트한다고 너무 무리한
게 원인인 것 같다. 장비보다 더 중요한 건 잘 훈련된 육체다.(1:14:42)



런:
이천 대회 최대의 난코스는 설봉유원지 가파른 언덕을 4바퀴 도는 달리기이다. 사이클에서 받은 부담 때문
인지 달린다는 게 너무 힘 든다. 빨리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2바퀴째 까지 계속 추월
당했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어 오르막에서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해야 하는데 오른쪽 발가락 바로 밑
발바닥 부분이 찢어질 듯 아파 빨리 뛸 수가 없다.

인간에게 고통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통 없는 운동도 많은데 달리기는 왜 엄청난 고통을 요구할까?
속도와 고통은 왜 비례하는가? 10km 뛰는 50분은 논문 몇 편 쓰고도 남을 긴 시간이다. 제 작년 기록보다
6분 늦은 기록으로 골인했다.(0:50:29 Total= 2:34:46)



Finish Line:
내가 늦게 들어 왔다는 사실보다 같은 에지부의 다른 선수가 20분대 기록으로 우승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포기하고 받아드리기에는 14분의 차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왜 우리는 자신과 남을
항상 비교하면서 살아갈까?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하면서 왜 타인의 기록에 연연하는 걸까?
좀더 높은 가치와 이상실현을 위해 선택한 철인삼종에서 조차 속세의 치졸한 경쟁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박군호 2009-07-23 00:00:24 [답글]
안녕하십니까! 이광원 선배님.
글 멋지십니다.
철원에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박용수 2009-07-23 11:13:28 [답글]
휴~~형님 글을 읽다보면....저는 점점 초라해질뿐.. 철원에서 뵙겠습니다..형님..
박용태 2009-07-24 13:41:42 [답글]
인석형님도 크랭크 암 엄청 짧은 거 사용하신다는 데, 형님 글 보고 크랭크 암 바꾸는 사람 꽤 있을지도...
이영미 2009-07-25 02:43:53 [답글]
그 억수 같은 비 때문에 사이클이 취소되었던 2년 전 경기가 저의 첫 데뷔였답니다.^^ 쥐가 둥둥 떠있는 호수에서 무려 한 시간 반이나 수영했어요.^^
임송운 2009-07-29 09:08:07 [삭제] [답글]
형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몸은 어쩔수가 없겠죠 하지만 형님처럼 철인의 몸으로 달련시키면 그것을 연장을 시키는 이유가 됩니다. 형님 족저금막염은 어떠세요.? 형님 조만간 뵈어요 고생많으셨습니다

(KTC)

이광원
124.49.5.165
전번에 운동화는 받았습니다. 시상은 제외해 주세요.07/22
강승규
203.247.6.141
네~ 알겠습니다. 후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07/22
송은수
219.254.49.93
저랑 몇 킬로를 함께 주행하신 분이신것 같은데..완주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