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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감동(2010 태백철인대회 후기 40)


인생에서 감동이란 단어를 빼버린다면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산다는 건 감동의 연속이다. 아침마다 대하는 신문 속의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부터 같이 훈련하며
만나는 동료들의 형제보다 더 진한 배려에 진한 감동을 느낀다. 가는 길이 멀고 험할수록, 여건이
나빠 더 심한 고통을 당할수록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태백은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triathlete 에겐 더 없이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대회임에 틀림이 없다.

훈련:
매일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은 없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매일매일의 훈련이나 경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이 만고의 진리는 철인운동
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란 자신이 한 훈련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 좋은
기록을 원한다면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한다.

5일 동안 친구들과 같이 간 중국여행에서의 무 절제된 생활이 대회에 많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연습부족뿐 아니라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속세의 친구를 만난다는 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며 방탕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5/29
어디 갈 때마다 항상 차를 제공하고 자신이 직접 운전까지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도 백승엽씨가 운전하는 차에 탔지만 너무 미안하다. 황기룡씨와 이홍재씨도 동행했다.
2시 조금 넘어 출발해 6시경에 도착했다. 호수로 갔다. 해발 1100m에 자리잡은 깨끗한 호수였다.

산 계곡에서 내려온 차가운 물이 호수 속으로 계속 유입되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찬지 발을 넣고 있을
수가 없다. 용기를 내어 물에 들어 갔으나 10초도 안되어 바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군에 있을 때
겨울에 얼음 깨고 물에 들어 갔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도저히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승엽이는 적응한다고 3번이나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고 기룡이는 상당히 먼 거리까지 수영하고 나왔다.

이 상태로 수영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 처럼 느껴졌다. 잘못온건 아닌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시작되었다.
콘도근처 식당에서 두부찌게 먹고 슈퍼들러 낼 아침에 먹을 햇반과 조리미역국 구입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5/30
창 밖으로 보이는 태백산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들어 왔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아침도 날씨가 살살하다.
25분 정도 조깅하고 간단히 아침 먹고 대회장으로 갔다. 수온이 무척 걱정되었는데 계곡물이 흘러 들어오는
초반100m 정도만 12도 정도이고 그 뒤는 괜찮다고 했으나 발을 담그고 있기가 고통스럽다.
수영이 취소되어서도 안되겠지만 하는 것도 너무 부담스럽다. 주최측에서는 수영에 자신 없는 선수는 그냥
사이클과 런 만 하라고 했지만… 그냥 하기로 했다. 인간의 강력한 적응력을 믿어볼 수밖에 없다.
시합 전에 3번 정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저온에 몸을 적응시켰다.


수영(1.5km)
3그룹으로 나눈 뒤 10초 간격으로 정각 9시에 출발시켰다.
미처 다음 팀이 출발대에 올라 서기도 전에 출발 신호가 울렸다. 추워서인지 호흡이 터이지 않았다.
몸싸움은 여전하고 1초라도 빨리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뿐이다.
손발이 얼었는지 거의 마비가 되는 것 처럼 느껴졌고 팔다리에 힘이 모두 빠져 이제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시점에서 호수를 벗어날 수 있었다. 손발이 얼어 슈트도 벗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꿈터로 가는 길은 가파르고 바닥에 까만 작은 돌이 깔려
있었다. (0:28:04)


사이클(40km)
출발과 함께 거의 10km 의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몸에 한기가 들 정도의 속도로 내려갔다.
평속이 거의 45km 정도이다. 오늘 아무리 늦어도 평속 40km 이상은 될 것 같은 꿈에 부푼 기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이었는지… 반환점을 돌자 고통스러운 길고 험한 18km의 긴 언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도 없는 언덕,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을 내려온 뒤 다시 1km 정도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바꿈터에 도착했다. (1:12:28)


런(10km)
이제 거의 살았다고 느끼는 순간 맞이한 거대한 공포, 런 코스는 겨울에 사용하는 스키 슬로프였는데
아래는 작은 돌들이 깔려있고 도저히 뛰어서는 올라갈 수 있는 경사가 아니었다. 허리도 아프고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무작정 걸었다. 다른 선수들도 모두 걸으니 조금 위로가 되었다. 대회에 나와 걷고 있다는
게 양심에 거슬렸지만 더 이상의 고통을 감당할 의지도 체력도 없었다. 2.5km을 두 번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
내려 올 때라도 좀 빨리 뛰고 싶었지만 고질적인 발가락 통증으로 속도내기가 어렵다.
뾰족한 돌들이 고문하듯이 발가락 사이를 파고 들었다. 많은 선수들이 날 추월해 갔다. (1:00:12)(2:44:27)

피시쉬라인:
순간과 영원은 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된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다.
그러나 우린 살면서도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어야 또 살 수 있다.
우린 매일 죽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인지 모른다. 죽음과 같은 고통
그 속엔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태백대회는 올림픽코스에서도 충분히 자극적인 도전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다.
기록에 관계없이 완주했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에이지 부에서 6등,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저조한
기록이었지만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다는 감동이 그 우울한 기억을 몰아내고 있었다.



박군호 2010-06-03 23:10:12 [답글]
글을 통하여, 대회의 난이도가 머리속에 떠오를 정도입니다.
진솔한 내용의 글 잘읽었습니다.
훈련지에서 뵙겠습니다.
이익재 2010-06-03 23:14:47 [답글]
아~~~!
너무나도 멋진,주옥과도 같은 글 이십니다
어느 책에서도 읽어보지못한 글귀...
제가 다시한번 쓰면서 가슴에 새겨 보겠습니다!

"순간과 영원은 반대 개념이다. 그러나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된다. 삶의 반대는 죽음이다.
그러나 우린 살면서도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어야 또 살 수 있다.
우린 매일 죽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인지 모른다. 죽음과 같은 고통
그 속엔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 이광원-

늦은시간...
글귀를 되새기며...
제게 주어진 삶의 내일을 열어 보렵니다
아이언윙의 매력은 이런 멋진글에서도.... (*^________^*)
이홍재 2010-06-04 07:35:41 [답글]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사진도 감사합니다! ^^
문철 2010-06-04 10:19:38 [답글]
얼음냉탕수영, 사이클과 런의 오르막의 고통이
실감나게 짐작이 갑니다...
이광원 2010-06-04 11:06:13 [삭제] [답글]
이익재님 감사합니다. 어제 아침에 친구가 갑짜기 산에 갔다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메세지를 그의 딸로 부터 받았습니다. 며칠 전에 건강하게 만났던 친구였는데...
충격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엇인지?
우리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그 엔젠가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내일일 수 도 있고 10년, 50년 후일지도 모르지만... 살아남은 그의 어린 가족을
만난다는게 두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