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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대구철인 삼종경기 후기 76 (2018.4.29) 철인 이광원

 

2018..4.28()

라일락 향기 바람에 휘날리는 내 고향 대구는 어릴 때 추억으로 가득 찬 곳이다차 몰고 오랫동안 먼 거리를 혼자 이동하기가 싫어 와이프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정말 어려운 부탁을 들어 주는 것처럼

불쌍해서 따라가 준다

는 불경스런 대답을 듣고도 비굴하게 참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먼저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물어왔다역시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 추억이 아로새겨진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모양이다.

행락객 차량행렬이 무서워 일찍 길을 나섰다수성못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2시경에 시합 등록하고 근처를 배회하다 최근에 팔공산 중턱에 전원주택을 지었다는 친구네 집으로 갔다.

GPS를 따라 외길 산속을 한참이나 올라가 전망 좋은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친구의 주택에 도착했다대학교 동기인 C는 학교 다닐 때 정말 놀기 좋아하는 친구였다허구한 날 동성로 바닥을 뒹굴었고 방학이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전국을 돌아 다녔다.

인간에겐 자기 만이 가지는 가치관이 있다한 번뿐인 인생을 즐겁고 재미있게 보내자는 C 와 운명같이 주어진 짧은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무어라도 안하고는 못 배겨 하는 나와는 뭔가 이질감이 있었다.

 그는 최근 팔공산 자락 300평 규모의 큰 전원주택을 팔고 더 깊은 산속에 100평 정도의 작은 주택을 짖고 아래쪽에 30평 정도를 더 구입하여 새로운 황토 기와집 한 채를 더 준비 하고 있었다. 산속에서는 죽어도 못살겠다는 와이프는 시내 아파트를 구해주고 혼자 사는 놈이 방 3개도 모자라 왜 독채까지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거시(]”

하기 위해서라고 세상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를 했다. 그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거시라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의 개념으로 집을 제공해서 잠자리가 필요한 중생에게 베풀겠다는 그가 만든 신조어이다.

 혹시 나중이라도 와이프와 싸워 갈데 없으면 와서 자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각박하게 나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 온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분위기에 취해 내일 시합도 잊은 체 술을 마시고, 섹스폰과 노래방기기의 반주에 맞추어 지나 간 유행가를 부르고 옛 추억의 아려한 정취에 빠져 날새는 줄도 몰랐다.


2018.4.29()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주는 밥 한 숟가락 먹고 대회가 열리는 수성못으로 갔다. 7시 전에 도착했는데도 주차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 주변 편의점에서 바나나 한 송이를 샀다. 시합 전에는 항상 바나나를 먹는다. 소화도 잘되고 시합 때 필요한 탄소화물도 제공해 주는 유일한 과일이다.


대구철인삼종경기

도심에서 철인경기를 치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바다나 강, 큰 연못이 필요하고 사이클을 타기 위해서는 자동차 통행을 통제해야 하는 도로가 있어야 하는 데 생소한 철인경기를 위해 시민의 불만을 감수하면서 대도시 지자체에서 허락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째던 14년째를 맞이하는 대구대회는 명품대회로 자리 잡은 듯하다. 1000여 명의 Triathlete 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8시경 물에 들어가 몸풀기 수영


수영(1.5km):

작년 750m 두 바퀴 코스를 1.5km 한 바퀴로 바꾸면서 라인이 오른쪽 있지 않고 왼쪽으로 바뀌어 버렸다. 왼쪽 호흡하는 사람에게는 더 없는 낭보가 되겠지만 오른쪽으로 호흡하는 대부분의 선수에게는 비보가 아닐 수 없다. 특히 “Fish like swimming”의 신봉자인 나 같은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는 절대 고개를 앞으로 들어서는 안 되고 밑바닥을 주시해야 하는 데 호흡할 때 오른쪽에 라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코스를 이탈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코스이탈로 100m 정도만 더 길게 수영한다면 2분 정도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연맹에서 시합마다 등수에 비례해서 주는 점수를 많이 받은 선수들은 동호인 엘리트로 분류하여 먼저 출발하는 혜택을 주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롤링스타드로 물속에 뛰어 들었다.

소매 없는 suit를 입어서 인지 가벼운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물이 차가웠다. 먼저 출발해서 몸싸움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지만 호흡할 때 옆 라인을 볼 수 없어 의식적으로 가끔씩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내가 제대로 가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하는 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으로 다가왔다.

 

물의 저항은 공기의 800배나 되기 때문에 힘으로 물을 밀고 나가려 하면 금방 지치고 말 것이다. 최대한 저항을 줄여야 하는데 안 해도 되는 불필요한 동작 하나가 저항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 반 정도 왔을까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 기록은 고사하고 어떻게든 여기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사명감과 괜히 참가했다는 후회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연습했던 길게 우아하게 뻗는 팔 동작은 어디 가고 목표를 항해 영혼 없이 허우적대고 있는 슬픈 현실을 받아드려야 했다. (0:29:20)

 

사이클(40km):

사이클 바꿈터 가는 길은 험난하다. 물에 젖은 맨발로 걷기 조차 위험한 가파른 계단을 뛰어 내려 도로에 좁게 만들어 진 바꿈터에서 슈트를 벗고 헬멧, 고글, 양발, 번호판, 신발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억누르며 가장 빨리 갈아 입는다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친구가 바꿈터에 있는 시간은 기록에서 빼주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몇 분 정도 쉬면서 안정을 취한 뒤 시합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아무리 연맹에 호소해도 허용해 줄 것 같지 않다.

작년 겨울 로라훈련시 주로 페달링(100-120) 위주로 훈련해서인지 페달링이 많이 좋아진 느낌이다. 기아를 내리고 힘으로 돌리면 순간적인 속도는 빨라지나 근육이 빨리 지쳐 오래 버티기 어렵다. 페달링(95-105)으로 타서인지 끝난 뒤에도 작년만큼 허벅지가 아프지 않았다.

킹 코스 같은 장거리 시합에서는 런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하지만 올림픽코스 같은 경우 나는 그냥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탄다. 힘을 아끼기 위해 사이클에서 늘어 난 시간보다 런에서 더 줄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천대로를 막아 차량의 출입을 완벽히 통제하기 때문에 어느 대회 보다 안전한 코스라 생각한다. 오르막도 거의 없고 도로 상태도 좋아 피 흘리며 도로에 내팽개처진 선수의 모습은 안 보였다. (1:09:20)

 

달리기(10km):

연인이나 가족과 나들이 나온 시민에게는 경치 좋은 수성 못 주변 흙 길이 천국 같은 곳이겠지 만 주변 2km 5바퀴 도는 짧은 코스도 나이 많고 지쳐버린 선수에겐 지옥과 같은 곳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한 달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헛기침이 나서 뭐가 잘못되었나 걱정이 되었지만 철인으로서의 알량한 자존심이 상처받을까 병원에도 못 가보고, 아무튼 그 영향인지 달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가슴에 무엇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정산적인 호흡이 되지 않는다. 뛴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이런 고문 같은 운동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데 너무 고통스런 운동은 취미가 아닐지도취미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대회 신청해 놓고 고민하고 그 먼 거리를 시간 빼앗겨가며 와서 시합 내내 후회와 고통에 시달리는 게 진정 취미라 말인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스타인 조차도 자신의 이론이 맞는지에 대한 체험은 못했을 것이다. 대구시민의 안식처 수성 못 주변 흙 길 위에 머물렀던 49분은 살아온 몇 십 년의 세월보다 길게 느껴졌다. (0:49:16) (Total= 2:27:44)

 

Finish Line:

통상 터질듯한 심장을 부여 잡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여기를 통과할 때 느끼는 짧지만 강한 희열조차 느낄 수 없다. 들어 온 뒤에도 답답한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3주뒤 예정 된 신안대회가 더 걱정되었다.

인간은 자유로와지기 위해 목숨까지 버렸지만 진정 자유가 뭔지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척도는 없다. 항상 상대적이고 비교해서 평가할 뿐이다. 일없어 매일 노는 사람에게는 휴식이 고통이듯이 항상 편안하고 구속 없는 삶은 권태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강한 구속을 통해서 만 주어지는 일종의 보상이다. 내가 철인삼종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더 없는 영혼의 자유를 맛보기 위한 육체의 강한 구속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식사

주최측에서 주는 식사를 하고 시상식을 기다렸다. 힘들게 들어왔지만 김백운에 이어 2등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는 이번에 에이지부에 새로 올라온 무명(?)의 선수 2명에 의해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제14회 대구시장배 전국철인3종경기대회 - 전체 결과.xlsx